천천히 교정을 걷다보면 ‘해원’도 되고, ‘선희’도 된다. 홍상수 영화 속 ‘그때 그 장면’이 눈앞에 그대로 살아나는 순간이다. “홍상수 감독이 후반작업을 학교에서 전부 진행할 정도로 하드웨어에 있어선 웬만한 대학 영화과보다 우위라고 자부한다.” 영화전공 조성덕 교수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다.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영화전공은 초대형 녹음실과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상업영화를 찍는 데 주로 사용하는 레드원 카메라 등 좋은 퀄리티로 극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자재를 100% 갖추고 있다. 예술디자인대학 건물 1층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도 빼놓을 수 없는 건국대학교의 명소다. 2011년에 개관한 KU시네마테크는 “관객이 최적의 조건과 상영 품질로 영화와 만나게 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영화전용관이다. 개관 이래 지속적으로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엄선해 꾸준히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제각각인 꿈들을 한데 그러모은 듯 건국대학교 영화과를 품은 예술디자인대학 건물의 외관이 저마다의 색으로 알록달록하다. “2004년 이후로 연극과 관련된 교과목을 다 없앴다. 영화연기만의 독특성, 고유성을 살리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표다.” 연기를 가르치는 조성덕 교수는 단언한다. 대개의 연기전공 학과들이 연극에 기초한 연기론을 가르치는 데 반해 건국대학교는 학과 창립 이래로 오직 영화매체에만 집중한 유일한 학교다. 건국대학교 영화전공에서는 철저히 스크린연기만을 교육한다. 연출수업의 경우 “한 학기 동안 학생들끼리 팀을 이뤄 1시간20분간의 수업 내내 극영화를 찍기도” 한다. 수업에 항상 카메라가 따라다닌다는 건 건국대학교 영화전공 수업의 특성 중 하나다. “항상 카메라를 써서 연기를 가르친다. 피사체인 배우가 카메라에 어떻게 담기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조성덕 교수는 설명한다. 그는 “단시간 내에 스크린에 배우가 비쳤을 때 관객으로 하여금 흥미를 갖게 만드는 매력”을 “스크린페르소나”라 명명한다. 건국대학교 영화전공만의 강점이자 특징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가진 고유한 스크린페르소나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연기를 가르친다. 특히 홍상수, 문소리 등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교수로 재직하며 전문성을 강조했다는 점이 독보적이다. 마지막 학기에 듣는 홍상수 교수의 장편시나리오실습 과목은 감독으로서의 명성만큼이나 학생들에게 인기다. 스크린연기를 강점으로 내세운 학과답게 문소리 교수 역시 수업 때마다 카메라를 놓고 강의한다.
실시간으로 스크린을 띄워 진행된 연기 수업
학교를 방문한 날, 조성덕 교수가 이끄는 고급연기2 수업에선 졸업공연으로 올릴 희곡 <돐날>의 한 장면을 연습 중이었다. 학생이 한 걸음을 내딛고,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조성덕 교수의 섬세한 연기지도가 이어진다. 학생 한명, 한명에게 모두 다른 디렉팅을 한다. 배우에게 고유한 스크린페르소나가 있듯 학생들에게도 자기만의 개성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예전에 존 포드 감독이 존 웨인에게 연기를 가르쳤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잘하는 아이는 자기 멋대로 하도록 그냥 놔두면 된다는 얘기다. 연기톤을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디렉팅이 추가될 때마다 단조롭던 억양엔 고저와 리듬이 살아나고, 무심하던 움직임엔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덧씌워진다. 조성덕 교수는 실시간으로 스크린을 띄워 연기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놓고 연기하는 걸 찍고, 다음주엔 그걸 직접 편집하고, 그다음엔 관객 입장에서 그 영상을 보며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짚어보는 수업방식이다.
학과의 역사는 짧지만 재능 있는 학생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개성 있는 젊은 배우인 이민기, 배두나 등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엄태구, 안재홍, 고경표 등이 모두 건국대학교 영화전공 졸업생들이다. 최근 드라마 <상속자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이민호, 미스코리아 김유미,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은지 등 다재다능한 연예인들도 건국대학교 영화전공을 졸업했다. 07학번 강태우가 연출한 <젊은 예술가들>은 올해 열렸던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된 135편의 장편영화 중에서 유일한 학생작품이었다. 비전 익스프레스 부문에 초청된 <젊은 예술가들>은 학과 교과과정 중 장편프로젝트워크숍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가의 창의력을 개발하는 커리큘럼
졸업생들의 끼와 재능을 잘 벼려준 것은 세심한 커리큘럼이 아닐까. 1, 2학년 땐 인간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예술가로서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 1학년의 전공필수 과목이 영화언어, 영화적 스타일, 영화사를 배우는 영화론과 영화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훑는 세계영화사인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밖의 이미지와 사운드 표현실습, 영화장르연구, 시나리오연습, 디지털비디오워크숍 등의 교과목을 통해선 영화매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영화적 경험을 쌓게 된다. 모놀로그연기, 즉흥연기, 메소드연기 등 다양한 연기를 학습하는 데에도 섬세하게 교과과정을 할애한다. 3학년이 되면 보다 심화된 연구를 시도하며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한다. 학생 개개인마다 개성과 관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 연구, 한국영화사, TV드라마극본, 영화산업론 등의 교과목만 봐도 세분화된 커리큘럼을 짐작할 수 있다. 졸업학년 과정은 고급연기, 다큐멘터리제작, 장편시나리오실습, 영화프로듀싱과 같이 영화인의 실제적인 업무에 한층 가까워진다.
학부를 졸업한 뒤엔 대개 현장의 인력이 되어 나가지만, 공부를 이어가고 싶은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일반대학원에 2013학년부터 박사과정이 개설된 영화전공이 있고, 교육대학원엔 연극영화교육전공이 있다. 특히 교육대학원 연극영화교육전공은 체계적인 연극영화교육 방법론을 익힌 연극영화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교육목표를 둔다. 실제 연극영화 교육 현장에 적합한 연극영화교육론과 교재 개발, 교육 사례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영화교육전문가를 양성한다. 요즘은 초/중/고등학교에서부터 연극영화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화‘교육’에 뜻을 둔 학생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과정이다.
입시전형
건국대학교 영화전공은 정시 다군에 속한다. 정시에서 10명을 선발하는 연출과 제작전공은 내신 30%에 수능 70%를 반영하며, 5명을 선발하는 연기전공은 수능 30%에 실기고사 70%를 본다.
“스크린페르소나를 본다”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영화전공 조성덕 교수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지침이 있다면. =우리 학교는 아주 현실적인 연기, 언제든 현장에 투입돼서 할 수 있는 연기를 강조한다. 가장 좋은 건 고전영화들을 보는 것이다. 세계 4대 영화제에서 최우수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은 다 봐두는 게 좋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스타를 키우는 데 얼마나 집요한가. 결코 아무나 스타로 키우지 않는다. 영화연기의 스타일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규격화돼 있지 않다. 많은 공부가 될 것이다.
-어떤 학생상을 원하나. =스크린페르소나를 첫 번째로 본다. 잘생기고 섹시하다고 전부 스크린페르소나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 사람만의 느낌이나 대사를 했을 때의 음색이 중요하다. 또 고전영화와 고전문학을 많이 보고 읽으라는 얘길 하고 싶고, 성실한 학생이라면 좋겠다. 물론 연기에 대한 열정도 필요하다. 다만 열정과 자의식 과잉은 다르다. 후자가 되어선 곤란할 것 같다. 중요한 건 내가 되든 안 되든 세상에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는 태도다.
-실기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배우는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자다. 3분 안에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낼 좋은 대본을 고르는 눈이 있어야 한다. 5초만 들어봐도 얼마나 연습했는지 다 안다. 시나리오를 숙독하고,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전후좌우의 맥락이 이해되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야 한다. 대사의 음색도 배우의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정성에 치중하기 위해 특기도 뺐고 소도구도 일체 사용 금지다. 오로지 연기만 본다. 얼핏 생각하기엔 똑같은 대본을 해야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다. 오히려 자기에게 어떤 것이 강점인지를 알고 그걸 잘 나타낼 수 있는 대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정한 거다. 3분 동안 순수연기만으로 자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