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21일 <올드보이>가 개봉했다. 복수, 폭력 그리고 근친상간이라는 문제적 딱지를 붙인 이 영화는 대한민국 스릴러의 새로운 표상이 되었으며, 300만명이 넘는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박찬욱 팬덤’을 형성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올드보이>가 재개봉한다(마침 한주 뒤인 11월27일에는 미국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리메이크 버전도 개봉한다). 이번에 재개봉하는 버전은 DCP(Digital Cinema Package)를 거친, 보다 감독의 의도에 가까운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업에 대해 “박력 있는 남성의 세계를 그린 지 꽤 오래됐는데 기분 전환이 되더라”라고 전하면서 기회가 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2000)나 <복수는 나의 것>(2002)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재개봉 버전은 오리지널과 어떤 차이가 있나. =사운드는 못 만졌고 이미지만 손을 댔다. 기술적 한계 때문에 생긴 스크래치와 먼지를 지우고 디지털 색보정도 다시 했다. 아예 딴 영화처럼 된 건 아니지만, 만드는 사람은 항상 작은 것에 집착하게 마련이지 않나.
-다시 보다보면 고치고 싶은 것도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실수로 찍힌 장면을 바로잡았다. 미도(강혜정)가 철웅(오달수)에게 붙들려 매트리스에 묶여 있는 장면에서 창밖이 보인다. 그런데 그때 스탭이 지나갔다. 거기가 4~5층 설정인데. (웃음) 난 평소 생활할 때는 안 그런데 영화 만들거나 글 쓸 때 편집증이 있다. 그 장면이 내내 께름칙했었는데 드디어 고친 거다. 그럼에도 못 고친 것이 있다. 자막 올라갈 때 강혜정이 입은 의상 중에 ‘쿠스토 바르셀로나’가 ‘쿠스토 바로셀로나’로 나갔다. 그걸 왜 못 잡았을까. 책 낼 때 편집자들이 질린다고 할 정도로 교정을 많이 하는 사람인데. (웃음)
-지금 다시 보면 새삼스러운 부분들도 있을 것 같다. =최민식씨가 그때는 참 젊고 말랐구나 싶더라. 그때도 많이 뺀 거였다. 세계 챔피언한테 몇달 동안 복싱도 배우고, 정두홍 무술감독이 액션스쿨에서 굴리고. (웃음) 오대수의 헤어스타일 결정할 때도 생각난다. 헤어/메이크업을 담당한 송종희 팀장이 그 (폭탄)머리를 제안했는데, 다들 이해를 못했다. 특히 최민식씨는 싫어서 막 도망다니는지라 송종희 팀장이 나한테 압력을 좀 넣어보라고 하더라. ‘나도 그건 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최민식씨한테 “종희가 소원이라는데 한번 들어줍시다. 해보고 아니면 다시 풀면 되지” 이렇게 억지로 끌어다 앉힌 거다. 돌아보면 스탭들의 공이 컸다. 감독들이야 각 파트의 스탭들이 의견을 주면 고르거나 좋다 싫다 밝히는 역할인데 송종희 팀장, 조상경 의상팀장, 류성희 미술팀장의 역할이 컸다.
-흥행 성적이 좋았던 작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아예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만든 상업영화지만, <올드보이>는 엄밀히 말하면 B급 감성의 마이너한 액션 스릴러다. 그 정도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영화와 그걸 수용할 수 있는 당시의 관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점이다. =<올드보이>는 유원지에서 놀이공원 기구 탄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자 했다. 유령의 집에서 귀신이 손목 잡으면 놀라다가도 놀이공원이니 웃고 넘기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근친상간이나 복수 같은 영화 속 설정은 굉장히 끔찍하고 잔인한 내용이다. 그러니 더더욱 양식화된 형태로 보여줘야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상업영화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영화적인 기법, 기교를 많이 쓰고 더 박력 있고 에너지 넘치고 인공적인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강한 패턴의 벽지를 사용한 것도 그래서다. 벽지는 곧 이 세계를 둘러싼 이 세계의 인상을 결정짓는 환경이기 때문이었다. 허구의 세계, 만들어진 세계의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다. 의도가 잘 작동한다면 신화의 세계, 원형의 세계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200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후, 세계 시장에서 ‘박찬욱 감독’의 타이틀이 갖는 의미도 달라졌을 것 같다. =일단 영화 수출 자체가 달라진다. 미국에서 각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친절한 금자씨>(2005)를 만드는 데 있어 더없이 좋은 환경이 마련됐다. <복수는 나의 것>도 흥행작이었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수혜를 많이 봤다. 결국 전작의 성공으로 다음 영화를 마음껏 찍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 스타일’을 드러내는 대신 시장에선 실패했다. <올드보이>를 만들 때 그 영향이 있었나. =흥행보다는, 한번 드라이하고 미니멀한 영화를 했으니 싫증이 난 거다. 결정적인 이유는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가진 개성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최민식은 다양한 역할을 모두 소화하지만, 당시 내가 본 그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가진 배우였다.
-<올드보이>가 이후 한국 액션스릴러영화에 끼친 영향이 크다. 액션 장면의 기술적 연출뿐 아니라 유괴, 복수의 소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스토리텔링이나 극적 재미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복수나 근친상간, 감금. 자기가 왜 들어왔는지,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고, 깨보니 감옥 안이고, 깨보니 또 바깥으로 나와 있고. 이렇게 한 사람이 내던져지는 것이 모두 합쳐져서 원형적인 모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극단적인 스타일로 그런 것이 표현되니까 창작자들한테 좀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인상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다.
-<올드보이>의 출현은 2003년의 ‘이상기온’과도 맞물린다.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지구를 지켜라!> <실미도>가 모두 2003년에 개봉했다. 흥행과 비평 모든 면에서 풍성한 시기였다. =올해 장준환 감독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십년 만에 돌아왔고 나(<스토커>)와 김지운(<라스트 스탠드>), 봉준호(<설국열차>) 감독이 영어영화를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짜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됐다. 그때는 모두가 신나서 영화를 만들던 때였다. 자신만만했다. 단지 젊어서가 아니라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작가적인 비전과 상치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걸,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잘만 한다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나이브하지만 그때는 그게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무엇이 달라진 건가. 창의적인 감독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지금의 제작 시스템이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프로듀서들이 감독들의 믿음을 지원해줬고, 무엇보다도 관객이 호응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지금 젊은 감독들 중에서 투자사에 좌우된다는 비난을 받는 이가 있다 치자. 그가 그 시절에 작품을 만들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 신인 감독이라면 지금의 감독들이 받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 같다. 그때는 그때의 시대 분위기가 있었고 산업적 활력이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한국영화가 잘 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침체기가 왔다. 너무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고, 통계자료도 축적됐고, 그 통계가 맞아들어가는 걸 확인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2003년이 있었기 때문에 2013년의 오늘이 있는 거라고 본다. 모든 것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게 마련이다. 흐름이고 운명이고 과정이라고 본다.
-<박쥐>(2009) 이후 할리우드 진출을 결정했다. 그때가 적기라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올드 보이> 이후 할리우드에서 여러 번 제안을 받았지만) ‘복수 3부작’이라고 해뒀으니 먼저 <친절한 금자씨>를 찍어야 했다. 마땅한 시나리오를 못 찾은 이유도 있다. 계속 복수극, 액션 장르영화 시나리오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액션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찍는 것도 보는 것도 별로인데 미국 사람들은 <올드보이>가 액션영화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계속 그런 작품을 요구하더라. 에이전트와 조율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전달하다보니 좀더 엄선된,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쥐> 때문에 하고 싶어도 스케줄이 안 맞은 것도 많았는데, 그러다가 <스토커>가 잘 맞은 거다.
-대기업 주도의 시장 상황에서 중견 감독들도 창작에서 제한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것에는 그런 시장 상황이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나. =투자를 못 받는다거나 간섭을 받는 것은 결국 냉정한 정글의 규칙에 의한 것이고, 전작의 흥행성과 각본의 상업성에 대한 평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본다. 내 경우는 대부분 내가 각본을 쓰는 편이고, 쓰는 일 자체는 즐겁지만 나 혼자의 머리에서 나오는 건 아무래도 비슷할 수밖에 없기에 좋은 각본을 받고 싶다. 그런데 나한테 그걸 보내주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그러니 미국에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영어영화 연출은 내 경우처럼 모두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한국과 해외 시장을 왔다갔다할 생각이고 아주 팔려갈 생각은 없다.
-<스토커>를 개봉하면서 해외 진출의 장점으로 많은 관객과의 만남, 캐스팅의 다양성 등을 꼽았다. =해외 작업이 불편한 것도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좋은 점은 결국 관객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도, 한 사람이라도 더 봐줬으면 하는 게 만든 사람의 심정이다. 영어로 만들면 영어권은 물론 비영어권에서 더 크게 개봉할 수 있다. 이번에 개봉을 하면서 작은 영화에 대한 말로만 듣던 배급 방식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꼈다. 폭스서치라이트를 보니 돈 많이 안 들이고 마케팅을 하는 것에는 귀재더라. (<스토커>는 반응에 따라 상영관을 확대하는 롤아웃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주 5개 도시 9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스토커>는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으며 넷쨋주 275개관으로 확대 개봉했다.)
-<스토커> 촬영 당시, 정확한 시스템 아래서 움직이는 프로덕션상의 환경 때문에 애먹었다고 들었다. 지금 되돌아보는 ‘할리우드 시스템’이란 어떤 것인가. =영화마다 다른 방식이 적용된다. 내가 경험한 건 그냥 작은 영화의 세계일 뿐이다. 인디는 아니고 스튜디오 시스템의 세계.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소품이지만, 참여한 배우나 스탭들의 수준은 높은, 그런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스튜디오가 의견을 낸다는 것이다. 작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끝도 없는 질문을 하고 의견 제시가 이어진다. 그러니 계속 답을 해야 한다. 그냥 이게 좋다고 해서 통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지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하다보니 말로 되더라. 대답을 하려다보니 나도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때는 중간에 ‘이 영화의 주제가 뭐냐’고 하면 대답할 게 없었다. 끌리는 대로 하는데 신기하게도 편집하다보면 일관된 논리가 있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한국영화에서 뒤에 하던 그 모든 걸 앞당겨서 하는 과정인 것 같다.
-이같은 작업 방식의 차이에는 동양과 서양, 문화권의 차이도 있을 텐데. =차이를 떠나, 어쨌든 이 방식에 대해 불평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은 따라야 할 일이다. 그들은 그 방식으로 100년을 해왔으니 그렇게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상한 거다. 미국 감독이 한국에 와서 12월의 한국은 왜 이렇게 춥냐고 불평하면 뭐하나. 싫으면 따뜻한 LA에서 찍으면 되는 거다. 결국 스튜디오영화라는 것은 자연환경과 비슷한 것이다. 다행인 건 내 경우에 그 결과가 좋았다는 것이다. 스튜디오에 답변하는 과정, 그들과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부딪혔던 이슈에 대해서는 내가 항상 제3의 의견을 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래서 만들어졌을 때는 서로 끌어안고 좋아했다. 단언컨대(웃음), 아무 간섭 없이 내 맘대로 찍었다면 지금의 <스토커>보다 낫지 않았을 것 같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아가씨>와 할리우드 서부극 <브리건즈 오브 래틀버지>(The Brigands of Rattleborge)와 복수극 <코르시카72> 등의 연출 제안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할리우드영화는 어차피 계약이 있어서 더 해야 한다. 주변에서 미국영화를 하나 더해서 확고한 입지를 만들고 왔다갔다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많아 그럴까 생각했는데 딱 마음에 드는 게 안 나온다. 언제까지나 시나리오를 읽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조만간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영화부터 들어간다면 <아가씨>(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를 제일 먼저 할 것 같은데, 소녀영화를 연달아 찍으려니 좀 그렇기도 하고. (웃음)
박찬욱 감독에게 만약 <올드보이>를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작업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것 같은가 물었다. 그는 <스토커>가 겉으로는 극단적인 걸 감추면서 섬세함과 우아함을 표방하는 영화라서 다행히도 잘 조율된 것 같지만, <올드보이>는 미국에서 만들었다면 좀 달랐을 것 같다고 했다. <올드보이>는 극단적으로 에너지를 밀고가야 하는 영화인데, 스튜디오에서 ‘이건 너무해요’라고 한다면 서로 부딪혔을지 모른다는 게 이유다. <올드보이>는 결국 2003년의 한국영화 환경이 만들어낸 에너지의 집결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 에너지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한국영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