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보는 책이 나왔다. 특정한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책을 찾아보기 힘들고, 특히 논란의 대상이 아닐 때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 풍토에서 범인과 진상이 분명한 사건을 취재한 책이 등장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 1차장,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교수가 쓴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이 바로 그 책이다. 1983년 10월9일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은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사실관계부터 책임문제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이론이 없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략적인 사실은, 북한이 공작원을 보내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살해하려 하던 중 몇 가지 우연한 일이 겹치면서 대통령의 아웅산 묘지 도착 시간이 늦어졌는데도 그것을 모르는 공작원들이 폭탄을 터뜨려서 그 자리에 있던 각료들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김현희의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과 달리 아웅산 테러에 대해서는 자작극설 등 음모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일이 없다. 당시 사망한 분들이 아까운 인재였기 때문에 애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 사건 자체는 잊혀져가고 있었다. 저자는 이 사건을 실제로 실행한 공작원들에 대해 취재해서 책을 쓴 것이다.
실제 테러를 일으킨 사람은 세명이다. 그중 한명은 도주하다가 미얀마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나머지 두명은 체포에 저항하기 위해서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가 손에서 폭발해서 각각 한팔을 잃고 붙잡혔다. 실명(失明)까지 한 ‘진모’라는 사람은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버티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한명은 범행을 다 털어놓고 미얀마의 감옥에서 25년이란 기나긴 수형생활을 하다가 간암으로 사망한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강민철이다. 그는 2008년에 죽을 때까지 남한으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고 한다.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북한은 사건에 연루된 것을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범인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 좀더 현실적인 희망으로 남한행을 원한 것이다. 단 하루라도 한국인이 살고 있고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 했다는 그의 사연은,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행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짠하게 한다.
사건이나 강민철 개인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명령에 의한 행위였다지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테러리스트에 대해 말하면서 남한의 현충원, 북한의 혁명열사의 능을 언급한 부분은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언제나 판단은 각자의 몫. 그 판단을 위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런 책의 출간은 반갑다. 저자가 책머리에 인용한 라종일 교수의 말이 오래 남는다. “이 책이 무기력한 망각에 저항하는 끈질긴 기억의 투쟁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