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게 아니라 이상한 상황이기는 하다. <빙과>에서 화자이자 주인공인 오레키 호타로가 생각하는 이 문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누나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 내용은 누나가 다녔고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있는 고전부가 삼년 연속으로 신입 부원이 없어서 올해도 신입 부원이 없으면 자동으로 폐쇄될 예정이라 동생이 고전부의 명맥을 이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친구 사토시에게서 ‘에너지 절약주의자’라고 불리는 호타로는 귀찮고 낭비라고 생각되는 일은 일절 손도 대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합기도와 체포술을 배운 누나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뜨뜻미지근한 마음으로 동아리실에 방문, 그런데 그곳에서 ‘청초하다’라는 말이 화해 소녀가 된 것 같은 지탄다 에루를 만난다. 여기에 사토시까지 끼어들면서 고전부는 그만 부활해버린다. “명목과 전통, 이 두 가지와 싸우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지는 나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쓴웃음을 짓는 것 정도다.” 학원 미스터리물이자 요네자와 호노부의 데뷔작인 <빙과>와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는 ‘고전부 시리즈’다. 애니메이션 <빙과>의 원작인데, 소설을 읽어보면, 아직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나서고 싶을 정도로 만화와 애니메이션화에 최적화된 이야기다.
책을 포개놓으면 뭘 할 수 있을까? 책을 포개놓으면 장아찌를 절일 수 있고, 팔에 붙이면 방패가 되고, 몇권 쌓으면 베개로 좋을지도 모른다. 이런 대화를 읽으며 키득거리고 웃는 사람이라면 애정을 갖지 않기가 힘들 이야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끼리인데도 남학생은 자연스레 반말을 쓰고 여학생은 자연스레 존대를 한다든가, 자타공인 회색으로 살고 있다는 고1 남자아이가 누나의 말을 지나치게 잘 듣는다든가 하는 데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학원물의 세계에서 벗어나 늙어버린 것일까.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에 빗대 말하자면 똑같은 10대 이야기라고 해도 <릴리 슈슈의 모든 것>보다 <러브레터>에 훨씬 가까운 귀여운 미스터리물. 책이든 만화든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본다 해도, 즐겼다면, 다른 쪽도 마저 탐하시길. 책은 표지가 예쁘고 애니메이션은 노래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