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공부 안 하고 놀잖아요.” 게임 중독법에 찬성하는 어느 학부모의 말. 요즘 한창 논란 중인 게임 중독법 입안자들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중독’이란 표현을 빌려 게임을 질병 목록에 소환하고 있지만, 이 법안의 발의자들뿐만 아니라 찬성자들에게 사실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한국인이 하루 평균 TV를 시청하는 시간은 3시간9분, 스마트폰은 1시간57분. 인터넷 게임 시간보다 더 길다. 전자파, 안구 피로, 운동 부족 등을 따져보아도 이쪽이 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 게다가 성형공화국 한국의 성형 중독과 다이어트 중독은 어떤가? 건강상의 이유라면 이 행위들도 의당 중독법으로 다스려야 할 거다. 아차, 기왕에 만드는 김에 비만을 유도하는 햄버거와 치킨 중독법도 제정하면 금상첨화겠다.
애초에 게임만을 관리 대상에 넣은 게 패착이다. 아이들 노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는 한국 학부모들의 ‘공부 중독’을 인질 삼은 채 게임으로 표상되는 놀이와 여가 문화를 단속함으로써 시민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얄팍한 권력에의 의지, 바로 그것이 게임 중독법의 속살이다.
이미 현대 자본주의는 중독의 사회다. 어디 게임뿐이겠는가. 전근대 사회에는 중독이 없다. 전통적 질서와 종교, 공동체 관계에 자아가 촘촘히 밀착된 까닭이다. 근대가 되어 사람들은 전통적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그 반대로 삶의 준거틀도 잃어버려야 했다. 노동할 자유와 굶어 죽을 자유밖에 없는 사막한 자본주의에 던져진 개인들은 길의 지도를 스스로 찾아야 했고, 스스로 삶의 기획자가 되어야 했다. 중독이란 이렇게 홀로 발가벗겨진 근대의 개인들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구성하지 못하고 특정 행위와 대상에 대한 집착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물신화의 과정이다. 일 중독, 섹스 중독, 스포츠 중독, TV 중독, 게임 중독, 마약…. 모두 물신화의 처연한 궤적들이다.
장시간 노동과 한줌의 여가 시간으로 구획된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그저 일 중독과 다양한 문화 산업의 미끼들이 유혹하는 중독에 빠져 있을 뿐이다. 정말로 중독을 치유하고 싶은가? 우리에게 더 많은 놀이와 삶의 여유를 달라. 스스로 노동과 삶을 기획하게 해달라. 더 많은 광장의 놀이만이 중독의 편집증을 구원할 수 있다.
게임 중독법을 발판 삼아 문화 콘텐츠 전반에 대한 통제를 확장하려는 새누리당의 얇디얇은 꼼수는 무릇 통기타와 장발을 단속하던 박정희 시대의 풍경을 꼭 빼닮았다. 향수병이 지나치면 망신살이 뻗치기 마련. 게임 중독법이 얼마나 웃겼으면 독일에서 한국 게임 개발자들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단다. 1조5천억원이나 되는 시장을 중독으로 몰아 탈탈 털어내는 게 창조경제의 본얼굴인가 보다.
놀이에 대한 억압은 또 다른 음지의 중독을 양산할 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나쁜 중독은 학부모들의 공부 중독이고, 그보다 더 나쁘고 추한 것은 학부모들을 볼모로 삼아 문화를 통제하려는 정치인들의 권력 중독이다. 저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