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전후 관계가 이상한 것이 참 많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건 고민거리도 아니다. 조지 클루니가 멋있어서 좋아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니까 멋있어 보이는 걸까. 이런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자학을 맛동산처럼 깨물어먹고 후회를 무좀처럼 달고 산다. 앙꼬 작가 역시 그런데, 고민은 이렇다. 과자를 너무 좋아하는 앙꼬는 노래방용 포스틱도 한번 뜯으면 끝장을 보는 열정의 소유자다. 맛만 보겠다던 처음의 결심은 오간 데 없고, 빈 봉지를 앞에 두고 자학에 빠지기를 여러 차례. 그러다 어느 책을 읽고 알게 된다. 자신의 우울증은 바로 설탕에서 온 것임을. 설탕을 끊고 나니 몸무게는 44kg까지 빠졌다. 설탕 없는 음식은 없으므로. 그러다 그만, 선물로 받은 고급 초콜릿과 함께 설탕의 참맛을 느끼고, 술만 취하면 설탕주정을 시작,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손으로 퍼먹기에 이른다. 결론? “난 좀더 건강해진 것 같고”(다음에 안 먹으면 되지), “설탕을 안 먹었을 때보다 우울하지 않은 것 같다.”(포스틱 사러 가자!) 반신욕 덮개를 샀으니 반신욕을 하고, 없는 돈에 헬스를 끊었으니 아무리 아파도 헬스를 해야 하는 눈물겨운 일상의 연쇄는 웃겨도 너무 웃긴다.
사무실에서 앙꼬의 그림일기 <삼십 살>을 읽다가 박장대소하는 바람에 회사 사람들이 몹시 민폐라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어! 이렇게 한심하게 사는 게 나 하나만이 아니라니 믿을 수 없다고! 모포를 뒤집어쓰고 방귀를 뀐 뒤 모포에 저장된 냄새를 맡으면 잔칫집 냄새가 난다니! 암투병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일 것처럼 시작하더니, 목욕탕에 간 어머니가 스님으로 오인받은 장면을 알몸에 별표를 그려가며 설명해내는 통에 끝내 웃기고야 만다. 그러다 박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일을 계기로 자신이 치열하게 살았던 증거를 확인하게 되는 에피소드에서는 마음이 뜨거워진다. ‘나의 결혼식’이라고 이름 붙은 이 장에서 앙꼬는 말한다. “결혼이란 건 인생의 중간점검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에겐 중/후반의 점검이고. 하지만 결혼을 하고 살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꼭 오늘이 결혼식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게으르다고 비난받는 일이 다반사였던 나는 지난해 이맘때, 그간 쓴 글을 묶어 <책읽기 좋은날>이라는 에세이를 냈다. 놀기만 한 것 같은데 책에 못 실은 글이 실은 글의 배도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이 나온 뒤 어머니가 동네방네 전화를 걸어 자랑하는 걸 보며, 내가 결혼을 안 해서 엄마가 인생 중간점검을 하고 자랑도 할 기회를 빼앗았구나 자책하기도 했다. 책 출간 1주년에 이어 어머니 1주기를 맞아 ‘나의 결혼식’ 에피소드를 읽으며, 스스로 게으르다고 비난받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 매일의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떠올린다. 모두에게 그에 걸맞은 행운이 있길 바란다. 앙꼬 작가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