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2001)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의 최대 흥행작 중 한편이었다. 이 영화는 각종 유행어를 낳았고 향수를 자아냈다.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이라는 두 주인공도 자주 회자되었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 등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유오성은 <친구>를 계기로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그 뒤로 유오성은 오랜 시간 정체해야만 했다. 적어도 영화배우로서는 뚜렷한 대표작 없이 10여년을 보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친구2>에 다시 출연한 지금, 그는 다시 준석이 되어 있다. 그의 소회가 궁금했다.
-이 시리즈는 “<친구2>로 끝나야 한다”고 단호하게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친구3>에 관한 계획을 묻기에 그렇게 답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 <친구>라는 귀중한 원석이 있기에 여기까지 온 게 사실이지만, <친구2>를 지나고, 나중에 또 어떻게 구현될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친구2>가 <친구3>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작품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반드시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 했던 게 아니라 적어도 차후를 생각하면서 만든 그런 수단은 아니라는 거였다. 영화가 열린 구조로 끝나고 있지만 그조차도 수단은 아니다.
-그 열린 구조의 후반부에 대해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오히려 닫힌 구조였다. 감독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내가 건의한 결과다. 아, 영화 속 저 인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 중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편인가.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이 영화가 전작에 너무 기대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전작의 내용들이 자꾸 개입하고 또 닫힌 구조로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친구>는 극장에서만 820만명이, 텔레비전으로만 3천만명 넘게 본 영화다. 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걸 반복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열린 구조 같은 걸 건의했던 거다. 물론 전체 방향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본다. 감독 자신이 갖고 있었던 몇 가지 생각 중 어느 것을 더 확고히 밀어붙일 수 있도록 옆에서 누군가 용기나 확신을 주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그럼 결과적으로 <친구>와 <친구2>의 변별점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개념이 좀 확장됐다고 본다. <친구>는 동년배들의 우정과 의리가 강조된다. <친구2>는 가족의 개념이 강하다. 그리고 <친구>에 동년배들의 한 시기가 들어가 있다면 <친구2>에는 인생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 준석이 차 안에서 쓸쓸하게 말하는, “내보고 오라고 하는 데가 있나” 하는 그 대사.
-오랜 시간이 지나 <친구2>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친구2>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은 2012년 말부터 계속 듣고 있었다. 동수는 죽었고 준석이 감옥에 갔는데, 그럼 어떻게 풀어낸다는 걸까 궁금했다. <친구2>로 <친구>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한테 운명처럼 또 선물처럼 온 것이니 솔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물론 감독에게는 장난스럽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거 잘못 만들면 당신이나 나나 바보 된다”고 말이다. (웃음)
-출연을 제안받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제안받았나. =처음부터 곽 감독에게 직접 연락이 왔던 건 아니고 주변에서 제안이 먼저 왔었다. 일의 순서를 따지자고 했다. 저작권 문제부터 먼저 풀자, 그다음에 시나리오 나오는 거 보고 결정하자, 그렇게 전했다. 그러다가 올해 2월에 부산에서 곽 감독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좀전에 말한 시나리오 수정 같은 그런 과정들을 거친 거다. 내가 처음 받은 건 시나리오 2고였는데 그것으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만에 수정이 됐더라. 감독 머릿속에 여러 버전이 있었고 지금과 같은 게 그중 하나였기에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수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곽경택 감독과의 오랜 불화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끼리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일이란 안되는 것 아닌가. 그런 문제는 <친구2>를 하면서 서서히 풀어간 것인가(2002년 한 의류업체 광고에 <챔피언>의 영상 일부가 사용된 것을 두고 유오성쪽이 초상권 문제 등을 제기했다. 양방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이를 계기로 배우 유오성과 감독 곽경택은 근 10여년간 등을 돌리고 지내왔다.-편집자). =화해고 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작품을 하면서 풀 것도 없이 이미 다 끝난 문제였다. 같이 나이 먹다 보니 달라진 것도 있다(유오성과 곽경택은 1966년생 동갑내기다.-편집자).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뭐가 옳고 그르고, 그런 거 따질 필요가 없는 거다. 따져서 뭐하나. 별로 잘난 것도 없는데. 자기나 나나 뭐 잘된 것도 없고. 자기는 <챔피언> 하고 대판 깨지고, 나는 <별> 찍으면서 별들에게 물어보고 있고. (웃음) 김성수 감독이 그러더라. “봐라, 이 자식들아 왜 싸워가지고, 도대체 너희 뭐냐?” (웃음) 지금은 곽 감독도 나도 가정이 있고 애도 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는 어린 시절이었다. 인생이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구나 싶은 거다. 우리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누군가 단순히 조금 더 앞에 있고 뒤에 있을 뿐이지, 그냥 다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잘난 척하지 말아라. 잘났으면 날아다니지 왜 걸어다니냐”고.
-기자 간담회장에서 <친구>를 찍을 “당시에는 속도의 문제였고, 지금은 방향의 문제”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렇게 그냥 길을 가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곽 감독을 만나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렇게 잘났으면 왜 이러고 있냐?” 그리고 바로 웃으면서 소주 한잔했다. 앞으로 우리 서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대신 이 영화 잘 만들자고 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작업이었다. 서로 작업 스타일 면에서는 어땠나. =본질적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다만 처음이 좀 힘들었다. 교도소를 걸어나오는 초반 장면을 찍는데, 몸이 굉장히 힘들더라. 아마 영화 근육을 내가 좀 잊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감독도 실은 걱정을 좀 했나 보더라. 12년 만에 하는 건데 예전 준석의 분위기가 날까 하고. 그런데 스탭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내가 터벅터벅 감옥에서 걸어나오는 걸 보고 감독이 “저기서 준석이가 나온다”고 좋아했다더라.
-준석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특별한 준비를 하진 않았다. 사투리 연습을 다시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정도였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내가 <친구> 때 좀 찐득하게 외워놨구나 싶더라.
-영화는 세 인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준석의 아버지 이철주(주진모)의 일화가 오히려 준석과 성훈(김우빈)의 일화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배우로서는 어떻게 느꼈나. =아니, 나는 오히려 이철주의 일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다. 원래 감독이 구현하고자 한 것이 세대간의 갈등, 어떤 인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철주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라는 것이 있다. 영화적으로 그것 나름의 미덕이 있다고 본다. 준석과 성훈 장면으로만 가면 리듬상 지나치게 숨통을 죄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이런 문제도 있다. 배우가 연기를 했는데 그 장면들이 날아가면 배우는 상처를 많이 받는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봤다. 서글퍼진다.
-<친구2>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준석의 면모라고 한다면 그가 ‘어른’이라는 것이다. 전작의 준석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어떻게 연기하려 했나. =<친구>의 준석은 격정적이다. 폭발하고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하지만 <친구2>의 준석은 나이 들었고 이제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줄어들었다. 나이 먹으면 힘도 빠지게 되어 있다. <친구>의 준석이 행동을 통해 강제로 남을 굴복시키려 했다면 <친구2>의 준석은 말로서 설득하려 하지 않나. 인생의 시기마다 다 갈 길이 따로 있는 거다. 언덕을 올라갈 때도 있고 그러다 쉬는 그루터기를 발견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 연기하는 데 큰 부담감이 없었다. 격렬한 연기를 하는 건 오히려 쉽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할 때 3인칭 시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변신이라는 건 사실 말이 안되는 것 같고, 그보다는 내가 연기하는 이 인물을 내가 지금 어떻게 하려 하고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준석은 한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속에서 크게 울거나 웃거나 하지 않는다. =준석이 성훈을 앞에 놓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아마 그 옛날 같았으면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을 거다. 더 격렬하게 했을 거다. 지금은 어떻게 하나? (영화 속 연기를 재현하며) “니 나하고 부산 접수할래?” 하고 그냥 조용하고 무심하게 말하지 않나. <친구2>의 준석이라는 인물을 보면 인생의 즐거움이 별로 없다. 가장 친했던 놈 동수는 떠나갔고, 영화상으로 보면 나머지 친구들도 다 없다. 예전 같으면 칼을 휘둘러도 더 격정적으로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않는다. 준석이 액션을 하는 건 후반부에 딱 한번 등장하지 않나. 하긴 그 장면을 보고 내가 아는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은 하시더라. “거기 한 200명이 있다고 해도 준석이 있는 그 앞으로는 못 가겠더라”라고. 장례식장 이후의 장면들을 말하는 건데, 그 장면들이 좋다. 이 마지막 25분까지만 관객을 데리고 가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부하가 준석에게 어디로 가겠느냐고 물으면 준석이 ‘어디 내보고 오라는 데가 있나?’ 하고 말하는 후반부 자동차 장면이 있다. 배우로서 그 장면을 좋아한다고 앞서 말했다. 보는 사람에게도 그 장면은 공들여 찍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 장면에서 내가 한숨을 훅 쉬는 게 너무 좋다고 그러더라. 나는 관객이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길 바랐다. 아, 나는 준석이 저 자식보다 낫구나, 내게는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구나 하고. 저 자식이 저렇게 살다가 저렇게 됐지만 나는 저놈만큼 비참하지 않아,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친구2>는 그런 걸 음미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차기작 계획 있나. =아직 없다. <친구2>가 일단 잘돼야지.
-물론 영화배우 유오성으로서의 관심사란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일 거다. 그렇다면 자연인 유오성으로서 최근의 관심사는 어떤 것들인가. =일상성을 따르는 것. 순리를 따르는 것. 도리. 그리고 조급해하지 말고 감사하자.
-최근 영세를 받았다고 들었다. =지난해에 아내가 먼저 받았다. 어머니도 실은 천주교인이었다. 이 영화를 하면서 내가 건 조건이 딱 하나 있었다. 일요일에는 촬영 못한다는 거. 일요일에 어기지 않고 성당에 갔다. 울산과 부산 등지에서 촬영하면서도 매번 서울에 왔다. 거의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영세 받는 날 축하하기 위해 우리 회사 대표가 성당으로 찾아왔기에 내가 그랬다. “내가 핑계대고 딴짓하나 싶어 감시하러 온 거 아니냐고.” (웃음) 시사회장에서 (김)우빈이가 저기 수녀님도 우리 영화를 보러 오셨다고 신기해 하기에 별말 안 하고 그냥 눈만 한번 찡긋해줬다. 그 수녀님이 바로 내가 다니는 성당에 계신 분이고 내가 초대한 분이었다.
그동안 유오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었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 불화가 잦은 사람. 유오성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인터뷰하러 온 어떤 기자는 내가 되게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고 고백하더라.” 구설에 올랐던 불미스러운 실화들, 거기에 얽힌 소문들이 그런 이미지를 제공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완숙을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 유오성이 가장 자주 꺼낸 말은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다. 이제는 세상을 좀더 넓고 고요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보니, 라는 뜻일 거다. 유오성은 그런 마음으로 준석을 연기했을 것이다. 현실의 시간으로는 12년, 영화 속 시간으로는 17년, 그렇게 유오성과 준석은 함께 ‘어른’의 자리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