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진로’라든지 ‘취업’이라든지 하는 문제에 대해 예전보다 좀더 많이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된다. 방송국에 있을 때도 그같은 고민을 하는 조연출이나 보조 작가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단 좀더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입장은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지게 만든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말로 털어내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게 어떤 전제 하나에 대해 내가 몹시 거슬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꿈’을 ‘직업’과 동일시하는 인식이었다.
20대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자기의 꿈과 직업을 일치시키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바람이지 꼭 그래야 한다는 당위는 아니다. 꿈은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직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추구할 수도 있다. 또한 애초에 직업으로 삼을 수 없는 꿈도 있다. 꿈의 범주와 직업의 범주는 일치하지 않으며, 비교적 일치하는 경우에도 꿈의 범주가 직업의 범주보다 훨씬 더 크고 넓다.
무엇보다 꿈은 직업이 되든 되지 않든 그 자체로 한 개인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주는 소중한 것이고, 직업은 그것이 꿈과 부합하든 하지 않든 생계를 마련해주고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소중한 것이다. 꿈과 직업은 각각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은 꿈과 직업이 일치해야만 자신의 삶이 ‘성공적’일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지 못하면 ‘실패’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다수의 실패자가 예고되어진다. 애초에 꿈과 직업이 일치되는 경우도 적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이는 더욱 적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처럼 취업 자체가 어려운 현실에선 생계를 우선으로 두고 직업을 정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꿈을 포기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반대의 선택 모두를 절름발이로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갑갑한 것은 꿈을 직업이란 범주에 가둬버림으로써 꿈을 축소시키고 본질을 훼손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다. ‘다 함께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 꿈입니다!’라고 말하는 청소년에게 우리 사회는 ‘그래서 사회복지사가 꿈이라고?’라고 반문을 하면, 이때부터 이 청소년의 꿈은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는 게 돼버리는 식이다.
도대체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꿈=직업’, 이런 전제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혹시 ‘산업전사’를 필요로 했던 과거 개발 독재 시절의 유산이 아닐까? 꿈이라는 한 개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산업화 사회에서 당장 쓸모 있는 ‘노동력’으로 한정시켜 전환해야 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런 경향이 강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가 아닐까? 정 그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거라면 진로교육이라도 제대로 하고, 직업적 소명의식이라도 잘 가르치든지. 신화에 억눌려 부서져가는 청춘들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