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지렁이를 추종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외계 생명체를 신봉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을 좋아하거나 따라하고 싶어 할 수 있고 북한을 좋아하거나 따라하고 싶어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정당 활동을 하면 안되나? 미국은 돼도 북한은 적이니 안된다고?(대체 내 삶에 적대적인 게 북한인지 미국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다수 포함된 듯한 정당은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50년 전에 끝난 줄 알았던 흑역사가 이렇게 다시 시작됐다. 그것도 정당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헌법 조항을 구실로 말이다.
헌법 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당해산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승만이 조봉암의 진보당을 없앤 것처럼 권력에 의한 마구잡이식 정당 해산을 막기 위해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라는 엄격한 전제를 달아놓은 것이다. 정당 결성과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이 이를 위배했다는 근거로 든 것은 강령이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니 ‘목적’이 그렇고, 내란음모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 등이 소속됐으므로 ‘활동’ 역시 그렇다는 ‘일방적 추정’이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니 종속적 한/미동맹 해체니 하는 말들은 여기저기 하도 많이 써서 식상하고 고루할 정도이고, 이석기 의원은 재판도 안 끝난 데다가 설사 유죄가 된들 이석기=통합진보당이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국가정보원 등의 선거개입은 이제 누가 기를 쓰고 은폐하려 드는지 밝혀야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짐작보다 심각하고 정권에 타격이 큰 모양이다. 정당해산도 모자라 시민단체까지 강제해산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국면을 바꾸려는 걸 보니. 100% 대한민국은 반대 세력이나 미운 세력을 일망타진하는 것이었구나. 이 시대착오적이고 노골적인 모양새를 보면서 다음 수순이 심지어 기다려지는 것은… 내가 미친 건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