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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하다고? 그게 우리 전략이지
김보연 2013-11-12

<토르: 다크 월드>의 성취는 <어벤져스> 시리즈 내에서 어떻게 위치하는가

<어벤져스>에서 ‘인간 슈퍼히어로’들과 지구를 지켰던 토르가 그의 동생 로키의 손을 잡고 신들의 땅 아스가르드로 돌아간 것이 2012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현실 시간으로는 1년, 영화 속 시간으로는 2년이 지나 <토르: 다크 월드>로 다시 돌아왔다. 상투적인 홍보 문구 같지만 이번 2편은 스케일도 커졌고 인물들의 드라마 역시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개별적인 성취와 함께 더욱 뚜렷해진 것은 <어벤져스> 시리즈 내에서 <토르> 시리즈가 갖는 독특한 성격이다.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앞다투어 영화에 출연하는 지금, 과연 토르는 어떤 자신만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을까.

올해 여름에 열렸던 디즈니 팬들의 가장 큰 축제인 ‘D23 Expo’에서 <토르: 다크 월드>의 새로운 연출자인 앨런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을 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에 대한 루머가 있더라고요. 저는 좀더 긴 버전을 원하고 제작사는 좀더 짧은 버전을 원한다는, 그래서 갈등이 있다는 얘기였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도, 적어도 저는 영화의 정확한 러닝타임을 모릅니다.” 촬영을 거의 끝낸 감독이, 그것도 개봉을 3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서 영화의 러닝타임을 모른다는 건 무책임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감독의 역할에 대한 낭만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디즈니와 마블의 중역들에 의해 흘러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작 방식을 조금 다르게 보면 지금 디즈니-마블이 어떻게 <토르> 시리즈를 만들어나가려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톰 히들스턴, 크리스 헴스워스와 작업을 마무리했고 내일은 앤서니 홉킨스와 추가 장면을 찍어야 해요. 우리는 계속 장면을 더해가고, 그렇게 영화를 더 발전시켜 갑니다. 극장에서 상영할 때까지 계속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케빈 페이지(마블의 대표 제작자 중 한명)는 절대 ‘그만’ 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웃음)” 감독의 말이다. 이 말까지 들어보면 <토르: 다크 월드>의 감독은 제작진이 주문하는 대로 매일 새로운 분량을 만들어 납품하는 성실한 일꾼 같다는 느낌을 준다. 참고로 영화의 첫 촬영이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앤서니 홉킨스의 영화 출연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즉 감독은 어떤 배우가 캐스팅될지도 모른 채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앨런 테일러 감독이 TV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왕좌의 게임> 등을 연출하며 경력을 쌓은 신인 아닌 신인 감독이라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토르: 다크 월드>는 상대적으로 감독보다는 제작자들의 의도가 훨씬 강하게 반영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라온다. 과연 마블과 디즈니는 <토르: 다크 월드>를 어떤 영화로 만들려 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해 <토르: 다크 월드>는 마치 색깔이 모두 다른 블록으로 조립한 장난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토르가 지구를 지킨다’는 다른 슈퍼히어로영화와 다를 바 없는 단순한 플롯을 갖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더 복잡한 이야기와 인물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와 로키(톰 히들스턴), 그리고 제인 포스터(내털리 포트먼)와 악당인 말레키스까지 네명의 주인공이 등장해 각자의 무대에서 자신의 드라마를 쌓아나간다. 그리고 그사이에 오딘(앤서니 홉킨스)과 왕비(르네 루소), 문지기 헤임달(이드리스 엘바), 토르와 제인의 동료들까지 거의 열명에 가까운 비중 있는 조연들이 가세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면서 혼란을 느끼기엔 아직 이르다. 이 영화에는 고대의 무기 ‘에테르’를 손에 넣으려는 말레키스의 음모를 중심으로 9개의 우주가 일렬로 늘어서는 ‘컨버전스’가 메인 이벤트로 등장하며, 토르와 제인의 러브 스토리는 물론 우주 최고 수준의 애정 결핍과 인정 욕구를 자랑하는 로키까지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호시탐탐 아스가르드를 차지하려 한다. 게다가 예상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오딘과 토르의 대립, 제인의 지구인 동료(특히 셀빅 박사 역의 스텔란 스카스가드)들의 소소한 활약까지 더해지면 이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정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많은 캐릭터가 독자적인 드라마를 갖고 움직이면서 이야기와 캐릭터를 120%의 포화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의 산만함은 감수해야 한다. 특히 악당과의 대립이 전면에 드러나고 토르와 로키가 전략적으로 손을 잡으며 이야기 전개가 급물살을 타는 중반부까지는 우주와 지구를 넘나들며 각 인물들이 벌이는 각자의 사건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를 조금은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 잘게 나뉜 장면들은 서로 경쟁하듯 등장했다 사라지고, 작은 디테일들 역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바로 지나가버린다. 멀리서 보면 이 영화가 지구를 지키는 슈퍼히어로의 모험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블록들의 불규칙한 조합일 뿐이다. <토르: 다크 월드>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유기적인 조합에서 만들어지는 근사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앞서 이야기한, 제작사의 지시를 기다리며 내일 어떤 배우와 어떤 분량을 찍을지도 모르는 감독이 느꼈을 혼란과도 적지 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기 자신도 그런 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이 산만함을 거침없이 그대로 밀고 나간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만들어나간 짧고 산만한 호흡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비교적 작은 갈등들(토르와 아버지 사이의 대립이나 로키의 갈대 같은 변덕)이 정리되는 중반부를 넘어서면 앞에서 이야기한 단점은 조금씩 장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말레키스의 지구 침공과 함께 자연스럽게 모든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지금까지 분산시켜온 각각의 흐름들이 늦게나마 제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말레키스와 토르 일행의 최후의 결투는 지금까지 참아온 영화적 활력에 대한 기다림을 한 번에 만회할 정도로 짜릿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특히 초반부의 진행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던 ‘컨버전스’는 후반부에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우주 어디로든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웜홀의 발생을 이용해 토르가 제대로 액션을 펼칠 멋진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껏 참아온 유머감각까지 선보이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이야기를 영화적 활력에 힘입어 한꺼번에 풀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의 이 장면들은 <토르: 다크 월드>의 가장 빛나는 순간인 동시에 <토르> 시리즈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의 단적인 예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멀티 캐릭터의 즐거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토르: 다크 월드>는 어쩌면 마블의 영화 제작 시스템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형제 영화들과 비교해 <토르> 시리즈만이 가진 차별점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언맨> 시리즈와 <인크레더블 헐크>, 그리고 <퍼스트 어벤져>의 주요 등장인물 수와 <토르> 시리즈의 등장인물 수를 비교해보자.

다른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한명의 슈퍼히어로와 한명의 악당을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고 나갔다면 <토르> 시리즈는 처음부터 다양한 개성의 인물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최대한 다양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것과 여러 캐릭터들의 다양한 매력을 한꺼번에 그릴 수 있는 것은 제작사로서도 관객으로서도 놓치기 힘든 큰 매력이다. 그리고 이번 <토르: 다크 월드>는 멀티 캐릭터가 어떤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며 자신의 영화적 방법론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토르> 시리즈뿐 아니라 다른 영화들에도 이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언맨3>는 워 머신의 활약을 강조하는 한편 두명의 악당을 동시에 내세웠고, 내년에 개봉할 <퍼스트 어벤져: 윈터 솔저>에는 캡틴 아메리카뿐 아니라 블랙 위도우를 포함한 쉴드 요원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게다가 역시 내년 개봉예정인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는 설정부터가 슈퍼히어로 자경단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더 다양한 인물과 복잡한 이야기는 <토르: 다크 월드>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TV나 저예산영화에서 주로 활동했던 신인 감독의 과감한 기용과 제작사가 주도하는 제작 방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연 이 산만한 활력의 즐거움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물론 <토르: 다크 월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떡밥의 제왕

마블에 낚이고 말았어!

<토르: 다크 월드>가 (<엑스맨> 시리즈를 제외하고) 마블의 여덟 번째 어벤져스 영화라는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각기 다른 여덟편의 쿠키 영상을 보았다는 말과 같다. 첫 시작은 <아이언맨>이었다. 자신이 아이언맨이라고 밝힌 토니 스타크의 모습으로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갑자기 안대를 한 새뮤얼 L. 잭슨이 등장해 “(슈퍼히어로가) 당신뿐인 줄 아나?” 라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게다가 쉴드와 어벤져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까지 했고 이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두 번째 마블 슈퍼히어로 무비인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더욱 커졌다. 영화가 끝난 뒤 본편과는 아무 관계없는 토니 스타크가 불쑥 등장해 “우리가 팀을 이루면 어떨 것 같소?”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두 영화가 잇따라 슈퍼히어로들의 연합에 대해 언급하자 어벤져스의 등장은 기정사실이 됐고, 이때부터 쿠키 영상은 본편만큼이나 흥미로운 내용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 뒤로는 떡밥의 강도도 더욱 과감해졌다. <아이언맨2>에서는 마블의 TV시리즈인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콜슨 요원이 등장해 <토르>의 등장을 알렸으며 <토르>는 로키의 건재함을, 그리고 <퍼스트 어벤져>는 아예 <어벤져스>의 짧은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더 큰 떡밥은 아직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페이즈1’을 마무리하는 <어벤져스>가 끝난 뒤에 마블 유니버스의 최강 악당 중 하나로 꼽히는 타노스(로 짐작할 수 있는 인물)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페이즈2를 시작하는 <아이언맨3>는 토니 스타크와 헐크와의 간단한 유머 장면만을 보여주며 잠깐 쉬어가는 듯했지만 이번 <토르: 다크 월드>에는 타노스의 출연을 뛰어넘을 만한 강력한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한다. 내년 개봉예정인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의 내용을 암시하는 이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아이언맨3>의 만다린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최근 벤 킹슬리의 언급과 함께 다시 한번 팬들의 호기심을 최대로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마블의 떡밥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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