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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노라

리브 울만 Liv Ullmann

리브 울만은 잉마르 베리만의 유명 배우들이 대개 그렇듯 연극 무대 출신이다. 그런데 영화 데뷔는 베리만의 다른 배우들과는 약간 달랐다. 이를테면 막스 폰 시도, 잉그리드 튤린, 비비 앤더슨 등은 전부 스웨덴의 연극 무대에서 연극연출가 베리만과 인연을 맺은 뒤, 베리만을 따라 자연스럽게 영화계로 진출했다. 리브 울만은 노르웨이 출신이고,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에서 연극을 했다. 이름을 알린 것은 역시 노르웨이 출신인 헨리크 입센의 고전 <인형의 집>을 통해서다. 여기서 집을 뛰쳐나오는 ‘노라’를 연기하며, 울만은 연극 무대의 ‘인형’이 된다. 베리만이 울만을 발견한 것도, 그녀가 <인형의 집>에서 노라를 연기할 때다. 울만은 베리만을 따라 스웨덴으로 왔고, 곧바로 <페르소나>(1966)에 출연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단박에 세계 영화계의 유명배우가 된다.

베리만의 연인이 된 ‘노라’

말하자면 리브 울만은 베리만과 처음부터 영화로 인연을 맺었다. 그것도 곧바로 주연부터 시작했다. 이것은 신인배우에겐 파격적인 대우였고, 베리만이 노라를 연기하는 울만에게 얼마나 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베리만은 <페르소나>를 촬영하기 시작한 1965년부터 울만과 연인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스물살 차이다. 베리만의 여성 편력은 웬만한 영화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함께 공연한 여배우들은 거의 다 베리만의 한때의 연인이라고 봐도 된다. 베리만은 이들 배우들과는 결혼은 하지 않았고, 다른 여성들과 모두 다섯번 결혼했다. 배우들 가운데는 해리엣 안데르손(<모니카와의 여름>의 주연), 그리고 비비 앤더슨(<제 7의 봉인>의 주연)과 짧은 동거를 한 적이 있다. 리브 울만과는 <페르소나>를 찍을 때인 1965년부터 5년간 동거했고, 딸도 한명 낳았다.

그런데 출세작 <페르소나>에서는 사실 울만의 개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울만은 이 작품에서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 혹은 말을 잃은 연극배우로 나오는데, 불안한 시선과 주저하는 겸손한 동작 등으로 주변의 분위기를 단번에 결정짓는 존재감을 보였지만, 이는 연출가에 의해 조종되는 모델 같은 연기이기도 했다. 영화계가 기억하는 울만의 캐릭터, 그것은 곧 ‘영원한 노라’인데, 그것과 비교하면 <페르소나>의 연기는 오히려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에 가까운 것이었다.

리브 울만의 개성은 베리만이 발견한 <인형의 집>의 노라와 비슷한 캐릭터로 나올 때 더욱 빛났다. 그래서인지 베리만의 영화에서도 점점 노라 같은 역할을 자주 맡았다. 처음에는 여성스럽고, 밝고,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집을 뛰쳐나가는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굳혔다.

<페르소나>를 전환점으로, 베리만 영화의 여주인공은 단연 리브 울만이 된다. 베리만 자신의 남성성은 막스 폰 시도를 통해 그리고 여성성은 리브 울만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될 때가 바로 이때다. 막스 폰 시도의 연약한 듯 폭력적인 면, 그리고 리브 울만의 순종적인 듯 독립적인 면, 곧 ‘노라’의 캐릭터가 발휘되기 시작할 때였다. <늑대의 시간>(1968)에서 두 배우는 짝을 맞춘 뒤, <수치>(1968), 그리고 <열정>(1969)까지 세 작품에서 연속으로 함께 연기했다. 세 작품 모두 처음엔 울만이 연약해 보였지만 결말부에선 오히려 남성인 막스 폰 시도가 심리적 파탄을 겪는 공통점을 갖는다.

<결혼의 풍경>, 베리만과 울만의 자전적 작품

베리만의 경력을 시대별로, 곧 50년대, 60년대, 그리고 70년대 전후의 3단계로 나누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는 먼저 해리엣 안데르손, 두 번째 단계는 비비 앤더슨과 잉그리드 튤린,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리브 울만이다.

리브 울만의 영화적 캐릭터가 가장 돋보인 작품이자, 베리만 후반기의 대표작이 <결혼의 풍경>(1973)이다. TV용으로 제작된 6부작이고, 파트마다 상영시간이 대략 50분쯤 된다. 여기서 리브 울만은 변호사 마리안을, 그리고 막스 폰 시도의 뒤를 이은 울만의 스크린 파트너 에를란드 요셉슨이 의사 요한으로 나온다. <화니와 알렉산더>(1982)가 베리만의 자전적 작품이라면, <결혼의 풍경>은 베리만과 울만 두 사람 모두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여기서도 울만이 연기한 마리안은 전형적인 노라이다. 처음엔 사랑스럽고, 순종적이고, 자식들에게 자상하고, 늘 미소를 띤 밝은 표정이다. 상대역인 요셉슨이 연기한 요한은 미래가 촉망되는 의사로, 아내를 사랑하는 사려 깊은 남자인데, 부부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전통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 마리안은 남편을 존중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의존하며, 전통의 관습을 따른다. 그런데 남편이 의과대학의 동료의사, 또는 젊은 제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부부 사이는 파탄을 맞는다. 그러면서 마리안은 남편의 아내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참모습을 거울에 비쳐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혼의 풍경>은 <인형의 집>을 베리만 스타일로 풀어낸 실내극이다.

마치 2막짜리 연극을 보듯, 스톡홀름의 집과 바닷가의 여름 별장, 이 두곳에서 이야기는 거의 다 진행되는데, 부부는 베리만과 울만의 실제 관계처럼 이별과 재결합의 위기를 넘나든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단순한 실내장식과 간결한 가구들은 인물들의 말라가는 마음을 그 어떤 대사나 연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간단한 공간과 두명의 배우, 이런 소박한 장치로 베리만은 6개의 이야기를 연결해 놓았다. 마치 에릭 로메르의 코미디 시리즈 같은, 또는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2012)처럼 간결한 실내극 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 만들기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소박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많은 감독들이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고, 우디 앨런은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1992)에서 <결혼의 풍경>의 주요한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다.

베리만의 후반기의 작품인 <결혼의 풍경>은 리브 울만의 ‘페르소나’는 노라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케 했다. 2003년 베리만은 마지막 작품인 <사라방드>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결혼의 풍경>의 후속편이다. 30년 뒤, 마리안과 요한의 모습을 그렸다. 곧 리브 울만의 늙은 노라를 상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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