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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은혜를 돌려주세요, 평화를
김선우 일러스트레이션 김현주(일러스트레이션) 2013-11-05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넓디넓은 해안 바위 구럼비가 있고 멸종위기종 생물들이 서식하는 바닷가 푸른 물소리가 있고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일급수 강정천에 은어떼가 노니는 강정마을을 지나다가 그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마을 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우연히 마주치면서 삶이 변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제주도를 여행하며 강정마을을 찾았던 지난해 봄,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고 있었거든요. 아름다운 그 마을에 들이닥친 큰 고통이 가슴 아파서 그 아이는 힘들어하는 마을 주민들 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지요.

앳된 얼굴에 미소가 해맑은 은혜. 그 애가 법정구속되어 감옥에 갇힌 지 한달이 되어갑니다. 은혜가 감옥에 갇히게 된 죄명은 ‘공무집행방해와 상해’라고 합니다. 강정마을에 와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공사장 주변에서 주민들, 신부님들, 수녀님들, 강정지킴이들은 미사를 드리고 뜨개질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도 추지요. 그러다 진압 신호가 떨어지면 수많은 경찰들이 몰려옵니다. 6∼8명 되는 경찰들이 지킴이 한 사람을 완전히 포위해 옴짝달싹 못하게 사지를 붙들어 갓길로 들어냅니다.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민의 생존권을 짓밟는 해군기지 건설이 불법적인 것임을 전하고자 하는 이 간절한 몸짓들은 비폭력 무저항의 저항입니다.

은혜는 몇달 전 기소를 당했습니다. 경찰들에 사지가 붙들려 있는 상태의 은혜가 발로 가격해 상해를 입었다고 고소한 여경은 처음에 전치 2주 진단서를 받은 뒤 다른 병원에서 6주씩 두번에 걸쳐 전치 12주 진단서를 끊어 은혜를 상해죄로 고소했습니다. 은혜가 해당 여경을 발로 찼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고, 해당 여경의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고, 목격자라고 증언한 여경들의 진술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경은 은혜에게 맞고 쓰러져 한동안 정신을 잃고 다른 동료여경들에게 부축받아 경찰버스로 돌아갔다고 증언했으나 그날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CCTV 영상에는 그 여경이 쓰러진 모습도, 동료경찰들에게 부축받아 돌아간 사실도 찍혀 있지 않습니다. 미심쩍은 진단서만을 가지고 은혜는 ‘정황상 그럴 수 있다’는 근거로 판사로부터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전치 12주이면 사건이 일어난 당시 당장 구속될 수밖에 없는 큰 상해인데, 왜 1년이나 지난 뒤 기소를 하고 아무 증거없이 사람을 구속할 수가 있는 건가요. 이런 말도 안되는 판결이 나온 것은 은혜가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강정지킴이’이기 때문이겠지요.

제주의 아름다움과 푸른 하늘을 사랑한 은혜. 더이상 맘껏 하늘을 볼 수 없는 감옥에 갇힌 채 은혜는 지금 수감번호 ‘12번’으로 제주교도소에 갇혀 있습니다.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길 간절히 바란 아이.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부당한 재판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스물두살 은혜를 기억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