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촬영현장의 켄 로치 감독.
필름 생산이 중단된 디지털 세상에서 필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하는 시대에 켄 로치(77) 감독과 그와 오래 일한 편집기사 조너선 모리스는 여전히 꿋꿋하게 스틴벡 편집기로 작업을 하고 있다. 스틴벡 편집기는 필름을 보면서 편집을 하는 아날로그식 수평형 편집기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두 사람은 현재 작업 중인 <지미 홀>이 마지막 필름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스틴벡 편집기 전용 테이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름 편집을 하다보면 필름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동날 때가 있다. 켄 로치 역시 <지미 홀>을편집하던 중 이미지와 사운드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25롤가량의 테이프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테이프를 구할 방도가 없었다. 역시 긴 시간 켄 로치와 함께 일해온 프로듀서 레베카 오브라이언은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생산 공장으로 찾아갔으나 그곳에서는 최소한 500롤 이상은 사야 했다”며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는 턱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테이프 공수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켄 로치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 편집팀에 소속된 스티브 블룸이 “켄 로치의 작업물을 무척 존경해왔다”며 스튜디오에 남아 있던 19롤의 테이프를 제공했다. 후배 영화인의 도움을 받은 켄 로치는 “우리는 35mm 필름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즐거워졌다. 픽사의 편집기사들이라면 우리가 왜 필름에 열광하는지 잘 알 것이다. 보라. 컴퓨터 작업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건 아니다”라는 말로 기쁨을 드러냈다. 모자란 다섯롤의 필름은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편집기사 마리 핀레이가 보탰다. 십시일반으로 모인 필름 덕분에 켄 로치와 조너선 모리스는 무사히 편집을 진행할 수 있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켄 로치의 신작 <지미 홀>은 뉴욕으로 떠났던 아일랜드 공산주의자제임스 그랄튼이 고국으로 돌아와 댄스홀을 열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켄 로치와 폴 래버티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배리 워드가 제임스 그랄튼 역을 연기한다. 2014년 여름에 첫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