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뱀파이어영화 연출을 생각해왔나. =짐 자무시_10여년 전부터? 7년 전에 이 영화와 비슷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투자를 받지 못했다. 2009년 <리미츠 오브 컨트롤>(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인생과 예술에 관한 상념으로 가득한 영화다.-편집자)을 연출한 뒤, 묵혀두었던 시나리오를 재집필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이 작품은 호러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수백년을 살아왔다. 그 긴 시간을 아우르는 러브 스토리와 이들의 관점으로 본 인간의 역사에 관심이 갔다. 새로운 문화와 경험에 대한 열린 자세를 얘기하고 싶었다.
-오래된 뱀파이어 커플, 아담(톰 히들스턴)과 이브(틸다 스윈튼)에 대한 영화다. 배역을 어떻게 준비했나. =틸다 스윈튼_뱀파이어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연인의 경우 꼭 수백년을 ‘생존’해오지 않았더라도 마치 수백년 동안 함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촬영을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감독과 톰(히들스턴)과 나는 우울하게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단지 연인이 아니라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의 결점까지 보듬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우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이런 관계를 자주 만나기 힘들지 않나. 서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끝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
-촬영감독 요리크 르 소와 이전에도 작업한 적이 있나. =짐 자무시_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에서 많은 촬영을 해야 해서 새로운 촬영감독이 필요했는데, 틸다가 요리크를 추천했다. 다른 촬영감독들과도 미팅을 했지만, 요리크와 수차례 만났을 때 무척 편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올리비에 아사야스도 그를 추천했고.
-모로코의 탕헤르와 미국의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짐 자무시_첫 버전에서는 로마와 디트로이트가 배경이었다. 하지만 탕헤르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촬영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이라면 이브가 끌릴 만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과거 디트로이트는 미국 중서부의 파리라고 불렸는데, 지금의 현실은 무척 비극적이다. 그런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짐 자무시 감독과 작업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 =틸다 스윈튼_오랫동안 촬영을 기다려온 작품이라 인내심이 필요했다. 일단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았지만. 다만 이미 오래전에 짐에게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들은 뒤라 기다림이 힘들었다. 짐 자무시 처음부터 틸다를 마음에 두고 쓴 작품이다. 매번 투자에 문제가 생기면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거든. 그럴 때마다 틸다는 “이게 다 좋은 징조”라며, “아직 작품이 온전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위로해줬다. 극중 이브처럼 늘 긍정적인 에너지로 격려해줘서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수호천사였다고나 할까. 틸다뿐만 아니라 함께 작업한 모든 이들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존 허트(크리스토퍼 말로 역) 역시 든든한 후원자였다. “촬영할 때 되면 언제든 연락줘”라고 말해줬다.
-선곡의 폭이 무척 다양하다. =짐 자무시_세계에는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얼마나 한정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만이 영화에 사용되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특히 상업적인 할리우드영화들은 음악을 천을 끊어오듯 도매금으로 사서 쓰는 것 같다.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음악들이 이렇게 다양한데, 이 음악들을 이용한다면 영화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텐데 말이다.
-작품을 보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게 된다. =틸다 스윈튼_이브와 아담이 수천년을 살아오며 접한 다양한 음악들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늘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우리 연령대”, “우리 세대”라는 말을 강조하는데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져 상상할 수 있다면 이 영화 속 3천년 된 이브와 500년 된 아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담에게 슈베르트란 얼마 전에 대화를 나눴던 어떤 사람이다. 그런 생각에 익숙해지면 10년, 20년뿐만 아니라 몇 세기라도 아우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생긴다. 지금까지 우리에겐 이런 자유로운 생각을 하도록 용기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구가 생기지 않았는가. 바로 유튜브.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됐다. 음악이나 TV, 영화뿐만 아니라 강의도 그렇고. 유튜브는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