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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 <두더지>
송경원 2013-10-30

여기 쓰레기가 된 삶들이 있다. 중학생 스미다(소메타니 쇼타)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 엄마는 바람이 나서 가출해버렸고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폭력을 휘두른다. 외딴 강가에서 보트 임대업을 하고 있는 스미다 주위에는 대여소 주변의 노숙자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자신을 따르는 평범하지 않는 동급생 소녀 차자와(니카이도 후미)뿐이다. 네가 죽어야 보험금이 나온다며 종일 구타를 멈추지 않는 아버지 앞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선택을 마친 소년은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홀로 서야 한다.

어떤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을 꺼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여타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정서나 영화 전반에 감도는 불가해한 에너지는 그 감독의 세계관 안에서 온전한 해독이 가능할 것만 같다. 소노 시온 감독의 <두더지> 역시 상투적인 장르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궤적 속에 자리한다. 후루야 미노루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두더지>는 3.11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풍경이 투사된 거울이다. 하나 이는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영화가 건져올리는 것은 폐허가 되어버린 일본인의 심리 상태에 가깝다. 원작 만화 <두더지>가 바닥 없는 우울과 침몰하는 삶에 주목했다면 소노 시온의 <두더지>는 밑바닥을 치고 기어서라도 올라오려는 에너지를 담아낸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율배반적이다. 폭력적이지만 따뜻하고 잔혹하지만 밝으며 심드렁한 척하는 와중에도 절박함이 묻어난다. 소노 시온만큼 ‘희망’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없지만 반대로 그런 그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떨어진 한 조각 가능성은 그 어떤 호소나 항변보다 설득력이 있다. 소노 시온 감독은 ‘평범 최고!’를 외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소년을 통해 누구나 이해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 이를테면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나 3.11 대지진 이후 비틀린 일본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보편타당한 메시지에 소노 시온이라는 색깔이 섞여 들여가는 순간 설명 불가능한 빛깔로 거듭난다. 그 불균질한 색채를 언어로 명확히 짚어내긴 힘들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 영화는 매우 뜨겁다. 거친 묘사나 폭력을 직시하는 스타일 때문이 아니다. 집요하고 거침없는, 날것의 생명력이 필름 아래 꿈틀댄다. 그것은 소노 시온이라는 이름의 에너지일 수도 있고 소년 스미다의 생명력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불행이라는 옷을 맞춰 입은 이 소년은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진흙탕 속을 뒹군다. 마지막 장면에서 앞으로 달려나가는 소년에게 외치는 ‘힘내!’란 말은 세상에서 제일 잔혹한 격려이자 근래 본 가장 강력한 엔딩이다. 목청이 터질 것 같은 그 외침이 망치가 되어 가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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