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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3-10-29

<10분> 이용승 감독

<10분>의 상영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는 성토의 장이 됐다. 마이크를 잡은 관객들은 제각기 자신이 겪었던 사회생활의 애환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쏟아냈다. 비정규직 사원인 <10분>의 주인공 강호찬은 그렇게 한번쯤은 ‘을’이었던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88만원 세대’인 이용승 감독은 단편 <런던유학생 리차드>에 이어 다시 한번 사실적이고 냉혹한 도심 속 정글로 보는 이들을 안내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경험을 <10분>에 반영했다. =자료원에서 영상자료를 검수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다. 1년 단위의 계약직이었는데, 정규직과 계약직은 겉으로는 하는 일이 비슷해 보여도 미묘한 차이가 있더라. 말하긴 뭣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미세한 지점들이 <10분>에도 반영된 것 같다.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10분>의 등장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한 점이 인상적이다. =단국대 영화콘텐츠 전문대학원에 다니며 만든 작품이라 제작 과정에서 <10분>의 인물에 대해 설명해야 했는데, 비슷한 느낌의 배우가 떠오르지 않아 동물사진을 대신 넣었다. 주인공 강호찬은 말, 부장님은 고양이, (강호찬을 제치고 정규직이 되는) 송은혜는 암사자, 노조지부장은 너구리에 비유했다. <10분> 속 회사가 정글까진 아니더라도 동물농장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장이 호찬에게 주는 선택의 시간이 ‘10분’이며, 이것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공기관에서 일하다보니 회사에선 사람의 가치가 곧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을’에게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줬어도 될 일을 다음날까지 요청하는 반면, 높은 사람에겐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도 급박하게 요구하지 못한다. 호찬에게 부장이 10분의 여유를 준 건, 그가 부장에게 10분 정도의 가치밖에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10분’은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은 영화를 구상하던 단계부터 염두에 뒀다.

-당신이 만든 단편 <런던유학생 리차드> 역시 세무서 아르바이트생의 애환이 묻어난 작품이었다. 사회적으로 약자가 처한 상황에 관심이 많은 듯 보인다. =시작점이 좀 다른데, 사회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의 입장에서부터 영화의 소재를 찾는 편이다. 내가 먼저 공감해야만 이야기를 디테일하고, 말이 되게 풀어나갈 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개인적인 얘기를 했을 뿐인데 그게 사회적인 영화로 비쳐지는 것 같다.

-영화연출 공부 외에 어떤 사적인 경험들을 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내가 대학을 좀 늦게 들어갔다. 25살에 중앙대 영화과에 입학했다. 그 이전에는 연기 입시학원도 다녀보고, 영상작가교육원 수업을 듣기도 하고, 영상자료원에서 영화를 보며 지냈다. 당시의 나는 너무 무력했다. 미래도 없고, 답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나를 한심하게 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바보들의 행진>과 <박하사탕>을 보게 됐는데,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쌓여왔던 감정이 그 두 작품을 보고 터진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의 나날들이 내겐 의미 있는 방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력은 다양하지만 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왔던 것 같다. 언제부터 연출을 지망하게 됐나.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중학생 시절 사촌누나가 사준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을 보고 나서다. 책에 실린 <아리조나 유괴사건>에 대한 글을 보고, 영화를 이렇게 사회적인 시선으로 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 영화를 보고 난 뒤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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