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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항상 제자리걸음” <배우는 배우다>

오영(이준)은 넘치는 의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인배우다. 특히 대본을 따르지 않고 연기와 실제 사이를 제 맘대로 넘나들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그런 그에게 한 매니저가 다가와 ‘톱스타’로 만들어주겠다며 명함을 내민다. 하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과정이 바람처럼 깨끗하고 순조로울 리 없다. 주/조연의 멸시, 스폰서 접대, 우스꽝스러운 광고 촬영, 원로 감독 비위 맞추기 등을 하나하나 견뎌내야 한다. 그런 뒤 잠시 달콤한 한때가 찾아오지만, 곧 오영도 앞서 그 자리를 스쳐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내리막길을 맞이한다. 배우 지망 여고생 성추행, 스폰서의 여자와의 내연관계, 조직폭력배와의 술자리, 촬영현장에서의 잡음 등이 그를 나락으로 이끈다. 다시 처음의 위치까지 내려온 그는 “돌아가고 싶어”라며 흐느낀다.

“<배우는 배우다>는 바로 ‘인생은 인생이다’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작과 각본을 맡은 김기덕 감독의 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삶에서 일정한 롤플레잉을 하고 있다.” 제작과 감독을 맡은 신연식 감독의 말이다. 말하자면 배우라는 직업군을 영화적 소재로 가져온 이 영화는 인생 자체가 한편의 연기(演技)된 드라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수미에 배치된 형식적 장치와 배우들의 연기가 그 메시지를 강조한다. 오영이 길거리에서 벌이는 소동은 연극의 한 장면과 교차편집되어 실제 상황처럼 보이기도 하고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인물(혹은 배우)들의 모든 말과 행동은 ‘리얼’한 것이 아닌 일종의 연기로 부각된다. 그래서 오영이라는 배우의 인생을 보고 나면 인생에 관한 과장된 비유로서의 연극을 보고 난 느낌도 든다.

다만 영화의 설정과 의도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묘사력과 리듬감은 아쉽다. 때때로 이 영화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본성을 깊숙이 찔러보려 한 것인지, 아니면 온갖 지저분한 뒷거래가 횡행하는 영화판을 겨냥하려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오영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은 늘 어딘가 조금씩 썩어 있으며, 각 신은 그 문드러진 속내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장면마다 ‘세다’는 느낌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계산한 ‘세기’의 강약 조절은 부재하다. 당연히 정상을 향한 등반에도, 밑바닥으로의 추락에도 적정한 가속도가 실리지 않는다. 그렇게 오영의 무용담은 자기만족적 서사에 그치고, ‘인생은 인생이다’라는 동어반복도 공허한 메아리에 머무른다. “우린 항상 제자리걸음”이라는 한 여배우의 대사가 인생에 관한 성찰보다 이 영화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적절히 들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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