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하는 거 좋아하세요? 두개 중 하나 골라주세요. 자주 한다. 가끔 한다.” 이 색스러운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만원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으로 듣는 느낌이 어떤 줄 아십니까? 정말 짜릿합니다. 인기 팟캐스트 <원나잇 스탠드>에서 진행자가 마광수 교수를 찾아가 던진 질문입니다. 여기서 뒤로 한다는 것은 후배위가 아니라 애널섹스를 말하는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는 팟캐스트. 이 단어는 더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닙니다. 아마도 <씨네21>을 즐겨 보시는 독자라면 더욱 자세히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팟캐스트는 일종의 개인인터넷방송국입니다. 십수년 전 인터넷방송이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개인인터넷방송국이 많았지만 방송용 장비를 갖추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 뒤 아프리카TV처럼 개인인터넷방송국을 가능케 하는 웹사이트가 많이 출현했지만 팟캐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의 단말이 가진 하드웨어적 기능을 사용해 만든 방송물을 송출하거나 수신하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38만4천km를 우주 비행해야 했던 아폴로11호의 모션에 탑재된 컴퓨터 성능보다 수십배 뛰어난 현대의 스마트폰이 단순한 통화용 도구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능을 발현한 시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변속기어가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뀌면서 운전하기가 더욱 쉽고 저변이 넓어진 것처럼 팟캐스트의 선전에는 하드웨어 발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개발 외에 어떤 것이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에피소드당 수백만 다운로드가 손쉽게 나오는 팟캐스트 전성시대를 가져왔을까요. 자, 이쯤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프로레슬러가 웬 팟캐스트 이야기, 하실지 몰라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원래 <엽기일본어>라는 인터넷방송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습니다. 1999년의 일이지요. 그 이름도 아득한 PC통신 서비스인 천리안을 통해서 볼 수 있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엽기 코드와 맞물리면서 수차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엽기일본어>는 지금처럼 광대역 접속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시청에 무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과 오디오가 결합한 형태로 진행됐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웹툰을 보는 것 같은 특이한 재미를 선사했던 것이죠.
제가 당시 <엽기일본어>에서 착안했던 것은 천편일률적인 어학 교재가 가진 지루함을 떨쳐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은 왜 그리도 사이가 좋으며, 자로 잰 듯 반듯한 상황 속에서 현실과 거리가 먼 문답만 주고받을까요? 일본영화나 만화 속 야쿠자들의 대사를 가지고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갑자기 문제를 냅니다. ‘야쿠자들이 시체를 처리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1번 드럼통에 집어넣고 시멘트를 부어서 바다에 버린다. 2번 옆집 냉장고에 보관한다. 3번 병원 영안실에 보관한다.’ 일본어로 정답을 써서 보낸 청취자에게 ‘드럼통과 시멘트 한 부대’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론 삼성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이었는데 상품수령을 거부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용달트럭을 불러서 그냥 보내버리고 말았죠. 이후 저는 딴지일보에서 당시 USB방식의 인터넷 라디오 콘텐츠 개방업무도 진행했지요. 그때 인기를 쳤던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도….
매일 밥만 먹을 순 없잖아?
저도 나름 업자 경력이 10년차가 넘어가는 바 잠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팟캐스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밌기 때문입니다. 공중파 방송이 한정식이라면 팟캐스트는 나트륨 가득한 라면 같습니다. <미슐랭가이드>에서 호평받은 셰프처럼 매끈한 맛은 없지만 친한 동네 형이 자취방에서 끓여준 라면처럼 거친 맛이 있습니다. 사실 공중파의 영향력은 지금도 막강합니다. 극중 배우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죽거나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는 막장 드라마도 최소 10%대는 나옵니다. 지난 대선 이후 뉴스는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통계를 보면 딱히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습관은 무시무시하죠. 그런데 그 내용을 보자면 조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지난 9월 촛불집회 때 <GO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는 것 같냐고 말이죠. 그래서 이곳에 나와 있는 시민언론, 저항언론의 숫자만큼 언론자유도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주말 서울 도심에서 수만명 단위의 집회가 열렸습니다만 단 한번도 공중파 뉴스에는 언급되지 않는 현실과 함께 말이죠.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할 시사 및 고발 프로그램은 절대 거악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제작인력 해고 및 축소 또는 외주 용역화를 통해서 극도로 다운사이징된 자기 체급에서도 더 만만한 상대만을 건드립니다. 뉴스 프로그램들은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멧돼지, 노루의 도심 출몰과 태풍과 화재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 보도에 집중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아버지와 군대를 매개로 한 가부장적 관점에서 모두를 위한 공짜 도시락 같은 안전함을 선호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여전히 재벌, 깡패, 경찰, 검사, 의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출생의 비밀을 통한 계급상승을 그려냅니다. 재벌 2세는 이미 늙었기에 그나마 ‘참신하게’ 재벌 3세(<시크릿가든>의 현빈)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팟캐스트는 진가를 발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팟캐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하면서 큰맘먹고 산 40인치 벽걸이TV는 영화, UFC, WWE 전용 수신기가 되었습니다.
21세기형 게릴라 라디오
인기 팟캐스트의 상당수가 라디오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거의 모든 전쟁, 재난영화를 보면 감당히기 힘든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 마지막 저항의 매개체로 삼는 것이 라디오입니다. 예전엔 덤불 속에 안테나를 숨기고 모포를 뒤집어쓰고 몰래 들었다면 지금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은 채 이어폰으로 들으며 출근 지하철을 탑니다.
저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기도 하지만 직접 진행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김남훈의 인파이팅>은 매일 2시간씩 방송되는 프로그램입니다. 공중파 수준으로 봐도 꽤 규모가 있는 편입니다. 공중파라면 작가, PD, 엔지니어, 어시스턴트까지 해서 4~5명이 꾸려갈 사이즈입니다만 제작진은 저를 포함해서 PD까지 딱 두명입니다. 작가가 없다보니 제가 직접 방송에 나올 게스트를 선정하고 PD와 상의해서 내용을 정합니다. 예전에 TBS교통방송에서 <김남훈의 SNS쇼>를 진행할 때는 1시간 짜리임에도 20장짜리 대본이 있었는데(작가가 워낙 꼼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2시간짜리 프로그램에 A4 2장짜리 원고를 들고 방송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고스러움이 적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라면도 맛있게 끓이기 위해서는 수프 투하시점과 물조절에 신경을 써야 하듯이 적은 자원에서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합니다. 공중파가 허리 아래를 공격하지 않는 권투시합이라면 팟캐스트는 이종격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로 걷어차고 넘어뜨리고 암바까지. 모든 공격이 가능합니다. <나는 꼼수다>라는 챔피언이 벨트를 반납하고 잠정은퇴를 한 지금, 과연 누가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요? 저도 일단 챔피언을 향해서 뛰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