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는 무엇보다 연애소설이다. 실제로 소설 속 러브라인은 매우 전형적이다.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스타인 안나 카레니나는,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사회적 지위나 재력에서 부족함이 없는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역에서 우연히 젊고 잘생긴 군인 브론스키를 만난다. 두 사람은 미칠 듯한 사랑에 빠지고 남편의 눈을 피해 하루가 멀다하고 밀회를 갖는다. 안나가 브론스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 말예요. 임신했어요”라고 고백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 유명한 고전이 어떤 면에서는 얼마나 통속적인지 절감하게 된다. 아이를 낳은 뒤 안나는 남편을 떠나서 브론스키와 함께 산다. 그 뒤의 전개도 TV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막상 브론스키를 차지한 안나는 얼마 지나기도 전에 젊은 애인이 변심할까봐 조바심을 친다. 남편을 버렸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 상태에서 믿었던 브론스키마저 밖으로 돌기 시작하자 절망에 빠진 안나는 결국 달려오는 기차 앞에 몸을 던지고 만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도 버림받은 비련의 주인공, 그리고 브론스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운 뒤 한눈을 파는 바람둥이 배신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소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안나에게 빠진 브론스키는 남편이 그들의 관계를 안 이후에도 당당히 책임을 지려고 한다. 남편의 집에서 자신의 아이를 낳는 애인을 위해서 그 자리를 지켰고, 그녀를 잃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권총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결국 함께 살게 된 이후에도 끝까지 상대방에게 충실하고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질투심에 휩싸인(거의 정신병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안나가 자살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비난을 한몸에 받은 채 그는 쓸쓸히 전쟁터로 떠난다.
아마도 역대 연애소설에서 가장 억울하고 할 말 많은 남자주인공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작가는 그를 위한 아무런 변명도 해주지 않는다. 다만 성경 구절에서 따온 예언 같은 제사(題詞)가 어딘지 그를 위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톨스토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약간은 황당한 스토리를 읽고 나면 역시 연애에 옳고 그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제삼자가 속단하려 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전 3권, 장장 1600페이지에 이르는 이 대작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교훈 중 하나. 물론 대문호의 대표작이 단순히 연애 얘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1870년대 러시아의 다양한 면모를 손에 잡힐 듯이 그려놓았고, 그 시절 사람들이 고민했던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답을 적어놓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어도 보람이 있는 책.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