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0분에 달하는 오프닝 장면의 압도적 롱테이크 이후엔 더이상 영화 전개가 불가능해 보인다. 우주망원경을 고치던 비행사들은 재난을 만나 고립된다. 탑승했던 왕복선은 파괴됐고 산소는 희박해져간다. 초보 우주인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은 끝내 망망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다. 어떻게 살아 지구로 돌아갈 것인가? 환상과 기만을 빌리지 않고는 도저히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샌드라 불럭이라는 배우를 믿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먼 우주가 아니라 지구 대기권 위의 상공을 배경으로 했다. 지구라는 실제 공간이 없었다면 영화 배경과 스토리는 지극히 초현실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 초반 지구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넓은 앵글에서 시작된 컷은 라이언의 얼굴을 향한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들어와 그녀 헬멧 속 시선으로 빨려들어간 뒤 라이언의 시점으로 전환되어 다시 먼 우주를 배경으로 한 넓은 앵글로 퍼져간다.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다. 관객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라이언의 시선으로 전이되어 그녀의 감각에 동참케 된다. 3D 기법은 우주의 공간감을 느끼기에 적절하게 동원되었다. 무한한 공간이 주는 불안과 공포는 갇힌 공간에서 경험하는 폐쇄공포와 역설적으로 유사해 보인다.
살아야 한다, 하지만 죽고 싶다. 라이언은 당위와 충동의 이율배반을 경험하는데 고독했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쓸 바에야 오히려 죽음이 더 가깝고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노화라 하든 필연이라 하든 죽음은 생을 빨아들이는 힘의 중심이다. 언제나 늘 우리를 당기는 보편적 힘의 작용인 그래비티는 달리 보자면 죽음 충동에 비유된다. 나아가 라이언의 귀환은 우울증에 대한 대응의 과정이기도 한데, 그런 관점에서 그녀는 증상을 극복해가며 지구로 귀환하는 리플리(<에이리언> 시리즈)의 20세기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