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를 할 때 가장 대책 없는 경우는 진 사람이 이긴 거라고 규칙을 바꾸거나 안 한다고 뻗대는 때가 아니다. 누군가가 약지 하나만 내는 식으로 엉뚱한 손모양을 내밀 때다. 대운하 안 하겠다면서 뒤로 돌아선 4대강을 대운하로 만들라고 ‘지시’(혹은 닦달)한 것처럼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거짓말과 탐욕이 뻔히 보여서 욕할 일도 많았고 창의적인 욕들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는 그런 말놀이 문화가 실종됐다. 다들 입을 닫는다. 귀도 막는다. 비판하거나 욕을 할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를 반대하며 자리에서 물러나자 정권 주요 인사들이 앞다투어 배신자 취급을 한다. 서청원, 홍사덕 같은 올드보이들이 여당 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환하며 ‘보스의 의리’를 과시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호출에 여당 고위 인사들이 몰려가 청와대 근처, ‘윗분’의 코앞이라는 이유로 폭탄주를 마다하고 와인잔을 홀짝였다니, 여기까지는 조폭의 업장 풍경이라 치자.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게 다른 내연녀가 있는데 여성 정치인이라며 민주당을 거론한 ‘저질 발언’이 초등학생들도 방청하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것도 긴급현안질문이라고 ‘저질러’진다. 청와대 수석이란 자가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재정을 한푼도 쓰지 않는다며 오해하지 말라고 오해하지 않는 국민 앞에서 설명하는 건 국민을 무지렁이 취급해서일까 본인이 무지렁이라서일까. 북한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한해 34조원의 국방비를 쓰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지닐 능력이 안되고 언제 될지 모르겠다고 징징대는 바람에 미국 워싱턴에서조차 의아해하다 못해 ‘좌절감’을 느낀단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도 지나는 시대에 이런 후진적 풍경을 볼 줄이야. 인내와 판단이 작동하는 최소한의 기준치가 무너지니,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혼잣말만 되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