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기자의 연애가 깨진 사연을 알리기 위해서 기자회견이 예고되고, 검찰총장에게 혼외 자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11살짜리 아이에게 유전자 검사에 응하라고 윽박지르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의미의 사생활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카트린 밀레의 책을 들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유명 미술잡지 편집장이 쓴 이 책은 저자 스스로의 성적인 경험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는 사드 후작이 쓴 <소돔의 120일>에서부터,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폴린 레아주의 <O 이야기>, 그리고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이르기까지 사춘기 소년들을 잠 못 들게 한 수많은 ‘야한 책’들의 계보에서도 이 책은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앞의 책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상상의 산물이라면 카트린 밀레는 자기 얘기를 썼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성기를 빠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저자 자신이다. 2001년에 출간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책은(같은 날 저자의 남편은 <카트린 M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카트린 밀레의 누드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생활의 존중이라는 것은 어떤 소재를 다루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150명이 참가한 그룹섹스를 한 경험에서부터 어떤 자세를 취할 때 가장 큰 쾌감을 느꼈는지까지 망설임 없이 써내려가면서도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결정권자는 자신이라는 점에 한치의 의심도 보여주지 않는다. 독자는 그녀의 성생활을 샅샅이 알게 되고서도 “관계는 덩굴식물이 자라듯이 확대될 수 있고, 서로의 자유를 완전하게 존중하는 가운데 새로이 맺어지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 … 그렇다 해도 나의 행동은 나 자신이 단호하고 고독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라는 대목에서 공감을 느끼게 된다.
대작 <사생활의 역사>의 책임 편집자인 조르주 뒤비는 “어느 언어에서든 ‘사적’이라고 표현하는 삶의 부분을 위해 명확히 구분된 특별한 영역, 즉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은둔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 사생활의 영역은 자기에게만 속하는 소중한 것,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명예를 위해 대중 앞에 내보이는 겉모양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남 앞에 드러내거나 보여서는 안되는 것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실례가 바로 저자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평 그대로 “지성적이고, 가차 없으며, 비범하게 솔직한 책”. 11살짜리 어린이에게도 존중받아야 할 삶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물론, 당신이 단순히 야한 책을 찾거나, 여자들이 진짜 어떤 체위를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할 때도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