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과 그 가능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축제,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2013)가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영화제는 ‘진실의 힘’(Truth, Let It Be Heard)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다큐멘터리 정신 즉, 기록을 해나가는 이유와 기록이 최종적으로 선망하는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총 91개국 756편의 출품작 중 엄선된 개막작은 현대판 ‘형설지공’이라 표현될 법한 에바 웨버 감독의 <블랙 아웃>이다. 국민의 80%가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밤마다 불빛을 찾아 공항, 주유소,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을 그린다. 끝까지 ‘삶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놓지 않는 영화의 끈덕진 힘을 주목할 만하다.
경쟁부문은 슬로건에 부응하는 ‘진실공방’들로 꽉 채워졌다. 그중 저스틴 웹스터 감독의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는 “당신이 이 비디오를 본다면, 나는 대통령에게 암살당했을 것”이라며 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과테말라 변호사 로드리고 로젠버그의 죽음 이후를 다뤘다. 정치적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과테말라에서 대통령을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 설정 자체가 흥미로운데, 죽음을 둘러싼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질수록 놀라움은 더 커진다.
디지털 시대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도 있다.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이 세상 모든 지식을 인터넷상의 도서관에 모으고자 1천만권 이상의 책을 스캔해 저장하는 구글을 가리켜 새로운 빅브러더의 탄생이라고 경고한다. 복잡한 약관에 무심코 ‘동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유출되는 상황을 다각도에서 다룬 비경쟁부문의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도 함께 챙겨본다면 불편해진 마음의 원인규명이 확실해질 것이다. 한편 말을 타고 죽은 염소를 잡아채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만의 스포츠 ‘부즈카시’를 다룬 <부즈카시>나 유럽 최대 습지대인 루마니아 다뉴브강 삼각주에 살고 있는 야생마들의 생사고락을 조명한 <다뉴브의 야생마> 역시 놓치기 아까운 수작이다. 대자연 속 사투를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만나보길 권한다.
비경쟁부문에서는 올해로 세 번째 EIDF 심사위원을 맡은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 감독의 특별전이 단연 돋보인다. 2005년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작인 <달의 형상>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카메라를 앞뒤로 움직여 대상을 관찰하는 ‘싱글숏 기법’으로 역동적이고 이색적인 장면들을 포착한 <북해의 청어잡이>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밖에도 인구 31만명 중 절반이 음악 활동을 하는 아이슬란드의 실험적이고 개성 강한 뮤지션들의 이야기 <천 개의 레이블: 아이슬란드 팝 기행>은 그곳의 풍광만큼 멋스럽다. 비틀스의 유일한 개인비서였던 프레다 켈리가 전하는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도 전설의 후일담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가 하면 미국 사법절차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장 6시간의 법정 다큐 <계단>도 관객에게 큰 도전이 될 게 분명하다.
관객의 참여를 이끄는 시도들도 반갑다. 교육방송에 걸맞게 국내 다큐 제작자들과 영상관련 학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단기 아카데미를 처음으로 운영하는 ‘EIDF 독 캠퍼스’가 대표적이다. ‘도시와 건축’ 섹션이 신설되면서 유명 건축가들과 함께하는 ‘건축 다큐 북 콘서트’를 덤으로 준비했다.
고된 기록 속에 빚어지는 진실의 힘을 믿는 관객이라면 올해 EIDF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KU시네마트랩, KU씨네마테크, 인디스페이스, EBS 스페이스 등 4곳의 상영관과 EBS 채널에서 상영되는 엄선작들을 통해 진실의 목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