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 만의 작품이다. 워낙 개성 강한 데뷔작을 직접 쓰고 연출했었기에 <화이>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지 궁금하다. =뭐랄까, 시나리오가 정말 술술 읽혔다. ‘여기에 뭔가 있다’는 느낌이 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연출하겠다고 하면 안된다. 그것을 세련되고 강렬하게 표현하려면 감독 입장에서 굵게 만져지는 맥이 있어야 한다. 그로부터 한달 동안 고민했고, 만져지는 맥이 분명하게 있었다. 석태는 도대체 왜 그랬는가, 화이는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찾고 싶었다. <화이>를 고쳐 쓰고 촬영하고 최종적으로 내놓기까지는 바로 그걸 찾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 사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 굳이 두 영화 사이의 개인적인차이점을 찾는다면 그것이다. =맞다. 그 사이에 가족이 생겼고, 그것이 <화이>를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웃음) 물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화이>도 만드는 내내 ‘석태와 화이를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여진구와는 함께 일기를 썼다
-<지구를 지켜라!>와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소년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구를 지켜라!>의프리퀄이라고 하면 어떨까. =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병구의 과거는 오직 플래시백으로만 존재하는데, 그가 어떻게 그리 된 것인지 완벽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 두편밖에 만들지 못했지만(웃음), 나 역시 성인과 소년 사이 그 중간 단계의 사람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뭔가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이전의 습성은 남아 있고, 뭔가 이전과는 다른 책임감을 떠안게 되기도 하고, 아무튼 사람들마다 성장과정은 다 다르겠지만 16살과 17살 아이들의 미묘한 지점에 끌린다. 무엇보다 병구나 화이나 좀 ‘짠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로 드러나지 않는 화이의 과거까지 가닿아야 하기 때문일 것 같다. =그 나이가 되기까지 아버지들로부터 영문도 모르고 범죄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나중에 범죄에 가담하게 되면서 영택의 집에 몰래 들어가게 될 때 직접 열쇠를 따서 들어가는 거니까, 그 이전에 얼마나 그런 훈련을 했겠나. 그게 뭔지도 모르고 배우고는 “아빠, 이거 내가 열었어!” 하고 좋아하고 그랬을 거다. 또한 원래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일 텐데, 아버지들은 그걸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참 짠하지. (웃음)
-혹시 당신의 그 나이는 어땠기에 그런 이야기에 끌렸나. =딱히 힘들게 살지는 않았다. (웃음) 학대하는 부모나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학교생활 스트레스일 뿐 별다른 건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어떤 타고난 우울함은 있었던 것 같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비슷한 다른 누군가를 보면 이해가 되는 정도? 거기에 더해서 어린 나이지만 괜히 존재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게 깊었던 것 같다.
-영화를 만들기 전 자신을 사로잡은 어떤 이미지 같은 게 있었나. =맨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유괴당한 아이가 커다란 화분에 숨겨져 있다는 설정과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다. 사실 분재라는 게, 뭔가 다른 물건을 덧대서 정상적으로 자라날 나무를 일부러 기형적으로 만들고는 ‘와 멋지다’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원래 영화에 등장하는 ‘화이목’이란 것은 없는데, 그런 식으로 아버지들이 화이를 자기 뜻대로 키워나가는 모습이 분재와 비슷하다고도 생각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화이는 아주 어렸을 때 벽에 비치는 나뭇가지 그림자를 보면서 무서워한다. 실제로 내가 어렸을 때 그랬다. (웃음)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불 꺼진 내 방의 벽에 그림자로 비치면 너무 무서웠다. <오아시스>(2002)에서 공주(문소리)가 가로등에 흔들거리는 목련나무 그림자를 보면서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그때 배우 문소리에게 어떤 최초의 동질감을 느낀 것 아니냐고 묻자, 그저 웃음만 돌아왔다.)
-일단 연출자로서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다. =서사가 갖는 무게와 별개로 굉장히 섬세한 감정선을 타고 가는 영화이기도 한데, 최초의 접근방식은 ‘드라마를 놓치지 말자’는 거였다. 내가 무게를 감당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것만으로도 벅찬 영화라고 느꼈다. 그래서 어딘가 스타일리시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이나 디테일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꺼려지기도 했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웃음) 그런 것에 신경쓰다보면 진실성이 훼손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리얼해도 군데군데 장르적 맛들이 숨어 있을 이야기를 지나치게 죽일 수도 있으니까, 그 경계를 잘 조절하는 게 어려웠다. 가령 총을 쏘는 장면에서 총을 멋지게 들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다르게 가야 할지 괜히 고민이 되는 거다. 그래서 올드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고전적인 면으로 봐준다면 감사하다.
-접근방식 측면에서 <지구를 지켜라!>와는 어떻게 달랐나. =<지구를 지켜라!>가 애초의 콘티 그대로 찍어나간 영화였다면, <화이>는 중요한 마스터 숏들 정도만 정해진 느낌으로 찍은 다음 순간순간 장면을 포착하는 식이었다. 그게 <지구를 지켜라!>와는 달리 여러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그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흐름을 만들어간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참 힘들더라. <지구를 지켜라!>는 딱 두명만 세게 부딪히는 영화였다면 <화이>는 5명의 아빠가 등장할 때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웃음) 각기 다르게 어떤 설정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고. 아무튼 스탭 구성으로 봐도 굵직한 촬영, 조명, 편집 등 당시와 같은 스탭이 한명도 없다.
-<지구를 지켜라!> 촬영 당시 연출의 고통을 돌파하기 위해 혼자 방에서 염색을 했다는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혹시 이번에는? =이젠 나이도 있고 가정도 있고 애도 있는데 그러면 안되지 않나. (웃음) 그런데 따지고 보면 <화이>가 그보다 몇배 더 힘들었다. 공간 이동도 많고 캐릭터의 중심 이동도 잦다. <지구를 지켜라!>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구현해내려 애쓰는 영화였다면 <화이>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게 있을 거야’라는 식으로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더 캐보려 했던 영화다.
-무엇보다 <화이>는 지독한 성장영화다. 그 성장통의 중심에는 거대한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 =화이의 성장과 석태의 파국은 맞물린다. 뭐가 되건 몰아붙여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괴물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걸 건드리고 가야 결론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관계의 극한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영화 속 5명의 아빠는 각기 다른 아빠들을 다 보여준다. 주변에서 보면 용돈을 10만원씩 쥐어주는 기분파 아빠도 있고, 별말 없이 야단만 치는 아빠도 있으며, 하여간 그 5명 중에 하나쯤은 있다. 물론 그중 꼭짓점에 자리한 것이 석태다. 아버지에 대한 극복과 콤플렉스 문제는 신에 대한 문제로 나아가기도 하고, 오이디푸스나 프로이트를 경유하여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살부(殺父)의식으로까지 나아간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그런 게 희미하게나마 있었던 것 같다. 실행에 옮기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웃음)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 밑바닥에 아주 딱 붙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걸 건드리는 게 아닐까.
-가장 큰 대립을 이루는 두 배우 김윤석과 여진구에 대해 얘기해준다면. =연출자로서 어떤 테크닉으로 둘 사이의 화학작용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둘 다 그게 가능한 배우도 아니다. (웃음) 말 그대로 우직하고 진실되게 쾅 맞닥뜨리고 가야 한다고 봤다. 다행히 두 배우 모두 쓸데없는 기교나 자잘한 눈속임을 하는 배우가 아니다. 물론 진구와는 함께 일기를 썼다. 영화 속에 살짝 드러나기만 하는 단서들로 그의 지워진 시간을 상상하며 캐릭터를 만드는 거다. ‘영주 아줌마의 발가락이 잘렸는데 왜 그럴까? 그날에 대해 화이도 기억나는 게 없어?’ 그렇게 물으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실제로 영주가 어느 날 집에서 달아나려고 버스를 잡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서 다시 집으로 가서는, 화이가 보는 데서 ‘네가 도망가면 이렇게 되는 거야’라며 발가락을 잘리는 그런 끔찍한 과거까지 플래시백으로 담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김윤석 선배는 처음부터 석태라는 캐릭터에 대해 나와 통하는 게 많았다. 변함없는 본질과 별개로 석태는 무척 예민하다. 따지고 보면 한순간의 ‘삐침’으로 극단으로 가서 악마가 된 인간이다. 우리가 석태를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까, 그 안에 정말 무엇이 있을까, 함께 가보자고 했다.
나 스스로는 좀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오래전 초고를 읽었던 사람으로서 원안의 강렬함은 그대로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장준환 특유의 연약함이나 사람 좋음(?)이 최종 작품에 많이 반영된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사람 참 안 변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는 좀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웃음) 사실 애초의 시나리오에서는 주변 인물들을 더 많이 죽였다. 진짜 살벌했다. 혹시 나홍진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보다 더 죽였을까. (웃음) 아무래도 5명의 아빠가 ‘지존파’나 ‘막가파’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러지 못한 게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가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게 재미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어야 화이가 더 슬플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고 더 슬픈 건 아니니까.
-<화이>를 통해 어떤 얘기를 가장 듣고 싶은가. =지금껏 충무로에서 장준환이라 하면 외계인 시나리오 쓰고 SF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그게 잘못 알려진 거였구나’ 하는 걸 퍼트려야겠지. (웃음) 그리고 드라마의 힘이나 진실성을 더 중요하게 파고든 감독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예전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했던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옛날에는 한곡을 연주하다가 음이 3개 정도 틀리면 그날은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더라. 그런데 어느 날, 순간의 음이 틀리는 것보다 자신이 얼마나 곡 자체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더라고 했다. 나 역시 <화이>에 대해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음이 많이 틀린 것 같지는 않고(웃음) 곡의 정서 측면에서 원곡을 무리없이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장편의 호흡으로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땀 흘려 일했다는 행복감이 크다. 나에게는 그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이렇게 더 하다보면 뭔가 더 나올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