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의 영화 연출을 맡은 김태용 감독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김태용 감독은 수화기 너머로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나도 모르겠다. 아직은 인터뷰를 하기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용 감독은 1년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했었다. 결국 영화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에게 영화 <신과 함께>의 밑그림을 보여달라고 조르는 수밖에 없었다. <미녀는 괴로워> <마린보이>를 제작한 원동연 대표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작하기 전인 2011년에 웹툰 <신과 함께>의 영화/드라마 판권을 모두 구입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는 2010년 1월부터 3년 동안 회당 평균 9.9점의 평점을 받으며 네이버에 연재된 인기 웹툰이다. 한국의 전통 신화 속 인물들을 데려다가 이승과 저승을 누비게 한 발상도 신선했고, 현대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사후 세계의 풍자적 묘사도 탁월한 웹툰이었다. 원동연 대표 역시 웹툰의 참신한 발상과 소재, 세계관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우선 신선했던 건 저승에 대한 묘사였다. 저승은 한국영화에선 거의 다뤄본 적이 없는 세계이지 않나. 또한 권선징악을 얘기하지만 그것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 주제와 메시지를 강요하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인데, <신과 함께>는 독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정리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웹툰은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총 3부작으로 구성된다. 영화는 그중에서 저승편을 가져왔고, 주인공으로 저승 삼차사의 리더 강림도령을 내세운다. “생전의 삶의 궤적이 사후의 삶을 규정한다는, 주호민 작가가 웹툰에 담은 세계관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지만 내용은 웹툰과 많이 달라질 거다. 영화는 ‘강림의 탄생’을 중심에 놓는다.” 장르는 “판타지 어드벤처 드라마”가 될 거라고 한다. 웹툰에선 마흔살도 되지 않아 세상을 뜬 김자홍이 진기한 변호사와 함께 저승에서 7명의 대왕에게 7번의 재판을 받는 과정이 차례차례 보여지지만, 영화에선 지루한 반복이 될 수 있기에 그 과정도 축소할 예정이라고. 이 말은 어드벤처물로서의 재미에 좀더 집중하는 영화가 될 것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과 함께>는 분명 텐트폴 영화(여름/겨울 성수기를 겨냥해 제작한 블록버스터)로 제작될 거지만,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블록버스터로 만들 생각은 없다. 의미 있는 세계관을 담은 블록버스터를 만들려고 한다.” 원동연 대표는 일단 10월에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짓고 내년 5~6월경에 크랭크인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촬영도 6개월 이상 진행될 것이고, 시각적인 특수효과(VFX) 작업이 많아 후반작업 기간도 짧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히 개봉은 201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영화 속 저승이 ‘짜치면’ 안되지”
<신과 함께>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
-<신과 함께> 판권 경쟁은 치열한 편이었나. =여러 군데에서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나중에 계약 성사하고서 주호민 작가한테 우리가 제시한 조건이 가장 좋았던 것도 아닌데 왜 우리와 계약을 했냐고 물었더니 <미녀는 괴로워>를 좋게 봤다고 하더라. <미녀는 괴로워>도 일본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인데, 주호민 작가가 그 영화를 제작한 곳이라면 웹툰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잘못 생각한 거지. (웃음)
-저승이 주요 무대다. 영화로 만들었을 때 위험부담도 있는 설정인데. =물론 저승을 갔다온 사람도 없고 저승을 본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종교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후세계가 어떨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범용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봤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삶을 살고 있고, 현세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재단받고 심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승을 어떻게 묘사하느냐보다 그러한 세계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투자사에서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했다. 웹툰에 많이 의지했던 초기의 시나리오가 모니터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신과 함께>를 통해 관객과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관객에게 어떤 화두를 던질 것인가 하는 고민을 거듭해서 하다보니 원작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수정하게 됐다.
-그 화두는 뭔가. =우리에게 신(神)은 하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영겁의 인연으로 엮여 있다.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인연이고 우리의 신일 수 있다는 거다. 거창하게 말해 그런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저승을 어떻게 구현할지도 궁금하다.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보게 될 거다. VFX쪽에 공을 많이 들일 예정이다. 속된 말로 영화 속 저승이 ‘짜쳐서’야 되겠나. 미술은 류성희 미술감독이 맡는데, 이미 컨셉아트 작업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제작자로서 김태용 감독에게 기대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 같다. =김태용 감독이 <신과 함께>를 연출하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감독의 전작인 <가족의 탄생>이나 <만추>가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영화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마이클 베이 영화처럼 통쾌하게 때려부수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인셉션> <다크 나이트>처럼 어둡고 암울하지만 나름의 철학을 실어나르는 영화. <신과 함께>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가 될거고, 김태용 감독이 인간과 가족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진 감독이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서로 후회하고 있다. (웃음)
-제작비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나. =100억원대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규모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는데, VFX 분량도 많고 저승에 등장하는 악귀들을 표현하려면 크리처 작업도 필요할 것 같다. 비용 대비 효용성을 최대한 살려 적정 예산을 가져갈 거다.
-캐스팅 작업은 진행 중인가. =접촉하는 배우가 있지만 밝힐 단계는 아니다. 스타성 있는 배우가 붙어야 하지 않겠나.
-제작자로서 웹툰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처음이다. 그 과정에서 고충이 있다면. =투자사나 배우나 웹툰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것. 원작의 느낌이 너무 세면 영화화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웹툰은 몇명의 사람이 봤는지, 어떤 연령층이 지지하는지 등을 댓글과 뷰(view)로 가늠할 수 있어 관객을 타깃하기에 용이한 면이 있다.
-드라마 판권도 동시에 구매했다. =드라마는 웹툰에 충실하게 만들 예정이다. 시기적으로 영화가 먼저 공개되는 게 맞기 때문에, 드라마는 영화 제작 추후의 일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