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8살 조카가 물었다. “삼촌 이름은 왜 네자예요?” 기시감이 두통처럼 몰려온다, 이 질문. 이젠 어린 조카에게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 돌멩이 씹듯 서걱거리는 마음 한 움큼.
98년 ‘이희일’에서 ‘이송희일’로 이름을 바꾼 이후 지금까지도 왜 이름이 네자인지를 숱하게 묻는 사람들, 또는 여성혐오증이 들끓는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내 이름을 조롱하는 사람들. 성씨 하나 더 붙였다는 이유로 15년 동안 파상적으로 질문 공세에 시달리다 보니 이젠 이 질문이 나오면 당신들 이름은 왜 그렇게 단순하게 세자인가요, 라고 되받아치는 것으로 그 지겨움을 조롱하곤 한다.
처음 이름을 바꾼 것은 가부장제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다. 16대 종손에게 부여된 이희일이란 이름의 무게를 버리고 싶었다. 이름 네자인 사람이 결혼을 하면 자식의 성이 무려 네개로 늘어나냐며 낄낄거리는 한심한 무뇌아들한텐 미안하지만,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 성을 물려받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선택’하는 건 성씨의 계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굴비 두름 같은 성씨의 숙명론 대신 내 정체성의 표식을 스스로 결정짓겠다는 의지의 소산일 뿐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에 양성쓰기 운동의 흔적이 있는 이름에 대한 가부장 마초들의 거부감도 퍽이나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성씨라는 것도 조선 초기만 해도 인구의 10%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성씨라는 게 애초에 고대 씨족사회에서 ‘통치’를 위해 만들어졌고, 계급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테크놀로지였다. 기껏 400년이 흐르는 동안 성씨가 다양하게 분화되고, 투기판처럼 가짜 족보와 함께 서로 사고 팔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뿐인데, 마치 지구가 생기면서부터 존재한 양 위세를 떠는 모양새, 사실 적잖이 남우세스럽다.
이름이 뭐예요? 라고 물어놓고 3음절이 아니면 성이 뭐냐? 이름이 왜 그러냐? 혹시 네자일 경우엔 너 꼴페미냐고 따져묻는 저 저렴한 오지랖 근성. 획일화된 인명 기록부에 ‘등록’되는 게 그렇게 자랑스럽더냐. 다름과 개성을 존중하기보다는 3음절 이름에 강박된 채 기존의 질서에 복속되기를 더 원하는 착한 신민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차이와 다름을 곧장 공포와 혐오로 치환해 자족하는 이 숨막히는 밀도의 한국 사회, 아파트공화국답게 참 다정하게 획일적이다.
8살 난 조카가 “삼촌 이름은 왜 네자예요?”라고 물었을 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응, 삼촌이 만든 거야. 마음에 들어서.”
한 개인의 다른 선택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저 표정 없는 격자 사회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불어넣는 숨결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뭐예요? 성씨와 이름이 좀 다르거든, 그 사람의 고유한 무늬겠거니 하며 기억의 벽에 각인하는 마음의 여유와 미소, 전혀 손해없는 관계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