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인에게 주겠다던 기초연금 20만원을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에게는 최소 10만원만 주겠다고 한다. 이로써 대선 당시 ‘핫’했던 복지 공약은 대부분 축소하거나 사실상 취소했다. 돈이 없다는 거다. 일견 이해한다. 하지만 돈 만들 생각도,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절한 티도, 고심한 흔적도 없다. 우리는 경리담당 직원을 뽑은 게 아니지 않나.
국민연금은 자기가 낸 돈을 밑천으로 하고 기초연금은 세금으로 준다. 재원이 다르다. 이 둘의 연계에 따르는 위험은 진작에 제기됐고, 정부 확정안이 나오자마자 반박 자료들이 쏟아졌다. 대통령은 “손해 보는 분들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이대로 추진되면 당장 2028년에 65살이 되는 국민연금 장기가입자들은 1만~10만원까지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든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이 단계적으로 올라 2028년에는 20만원씩 지급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나오는 뻔한 결과를 이렇게 쉽게 무시하다니. 아빠 회사에 근무하는 경리담당 직원이 아니라면 이런 안이한 판단과 계산능력은 심각한 귀책사유이다.
앞으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고 여건이 되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발언도 듣기 불편하다. 어떻게든 공약 파기나 후퇴가 아니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싶은가 본데, 말 안 들으면 검찰총장도 날리려는 절대권력 앞에서 국민대타협이 가능이나 할까. 그저 참으라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이 물건너 갈 때도 그랬지만 각종 심각한 민주주의 퇴행이나 복지 공약의 연이은 공중분해 과정에서 설득하고 타협하고 갈등을 조절하고 차선이라도 최선을 다해 찾아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국민은 대통령의 ‘시혜’ 대상이 아니다. 옷 잘 입는 ‘여왕’이 아니라 일 잘하는, 아니 제발 일 좀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