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내가 왜 만화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소년, 데이브 리쥬스키는 만화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그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지는 않지만 왕따도 아니었고, 개그맨이나 천재 과도 아닌, 그냥 존재만 하는 학생이었다. 어머니는 열네살 때 잃었지만 암살이 아니라 동맥류.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여자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아들을 키웠다. 매일 밤 똑같은 식사, 대화의 주제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미래”. 그래서 소년은 말한다. “그러니 내가 왜 만화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만화책이 해방구, 탈출구라면 그것을 일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그러니 소년은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한다. 배트맨처럼 부모의 복수를 꿈꾸는 억만장자가 아니고, 스파이더맨처럼 방사능에 노출된 신세도 아니며, 슈퍼맨처럼 외계 행성 출신의 초인은 더더욱 아니지만 여튼 슈퍼히어로가 되어보기로 했다.
영화 <킥애스>의 원작인 코믹스 <킥애스>는 내용이 거의 같지만, 셀프메이드 영웅이 된 소년 데이브의 캐릭터는 영화쪽이 더… 코믹하고 전형적이며 밝다. 한쪽의 소년은 결국 짝사랑에 실패하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보내준 오럴섹스 사진을 보며 자위하는 상황이고, 다른 한쪽의 소년은 짝사랑에 성공하며 하늘을 나는 슈트를 입고 힛걸을 구해내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소년은 결국 슈퍼히어로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했을 때 난 만화책이 얼마나 틀렸는지 알게 되었지. 마스크를 쓰는 데 필요한 건 트라우마가 아니야. 부모님이 총에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광선이나 파워 링도 아니야… 그저 외로움과 절망감의 완벽한 조화만 있으면 돼.” 영화 <킥애스>에서 힛걸에 집중하게 만들었던 크로 모레츠와 코믹스 속 힛걸의 싱크로율은 100%에 가깝다는 점도 눈여겨볼 것.
10월17일 개봉을 앞둔 <킥애스2: 겁없는 녀석들>의 내용을 미리 알고 싶다면 이번에 시공사에서 나온 세권의 코믹스가 도움이 될 것이다. 코믹스대로라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상의 눈으로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소속원들에게는 더할 것 없이 완벽했던 하나의 가족이 처참하게 파괴된다. 소녀는 또 하나의 가족을 얻지만 학교에서 처절하게 왕따당한다. 모험이라기보다 상실의 끝에서야 소년은 “왜 이런 캐릭터들이 창조되었는지” 알게 된다. “우린 모두 자신의 인생에 약간의 색깔과 해피엔딩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한 거야… 왜냐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환상과 현실을 분리하고 현실에 집중하기, 어른이 되기.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난간에서 뛰어내리던 (내가 슈퍼맨이라는) 확신에 찬 꼬맹이가 내 안에서 영영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 처절한 성장담을 보며 울적하게 돌아본다. 살았니, 죽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