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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 피해자의 미래 <소원>

2008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급부상한 아동 성폭행 문제는 지난 5년간 한국 범죄드라마물이 가장 빈번하게 스크린으로 소환하는 소재가 되었다. 관객의 정서에 가장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아동’ 주인공과 ‘성’, ‘폭행’같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재들의 결합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가세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언론에 보도된 법정의 처벌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게 가벼워 보였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 소재의 영화들에서 주제는 늘 ‘복수’나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소원>은 ‘범죄 가해자에 대한 고발이 아닌 피해자의 미래’에 중점을 두었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아동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이 ‘그 일’ 이후 어떻게 일상을 회복해나가는지를 이야기하는 데 더 공을 들인 영화다.

비오는 날 아침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학교를 가다가 나쁜 어른을 만나 끔찍한 범죄의 대상이 된 소원(이레)이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엄마 미희(엄지원)보다는 112에 전화를 거는 야무진 소녀다. 영화는 영리하고 밝은 성격의 꼬마였던 소원이가 할머니의 말버릇처럼 되뇌었던 ‘아이고 죽겠다’를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는 비관적인 질문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저릿저릿하게 보여준다. 술에 취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가해자를 제외하고 소원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은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그녀의 불행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다. 그리고 모두 힘을 합해 소원이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아동 성폭행 피해자와 그 가족을 치유할 수 있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웃자란 소원이의 모습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아이를 위해 시간을 두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부모의 모습은 가슴을 부여잡게 만든다. 주변 이웃의 따뜻한 배려는 안도감을 준다. 때로는 가해자에 대한 질책과 미약한 처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전체적인 톤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감독은 새로운 시선을 확보하거나 현실적인 문제를 밀도있게 고찰하는 대신 눈물로 공감하고 웃음으로 위로하며 희망을 통해 극복하기를 ‘소원’한 듯하다. 그 ‘소원’은 배역을 살아내듯 연기한 배우들로 인해 현실적인 힘을 얻는다. 특히 화장기 없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이를 챙기는 미희의 모습을 보면 선배 엄마이자 상담사를 연기한 김해숙의 모습에 배우 엄지원의 미래가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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