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심야식당처럼 말이지. “마스터, 오늘 노래 한곡 부탁해요. 사표를 내고 왔거든.” 얼굴 길고 허리 길고 말수 적은 마스터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몇장의 음반을 눈앞에 늘어놓을 것이다. 아니지. “마스터, 바비빌의 <술박사> 들을 수 있어요?”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 없이 곡을 틀어준다, 그리고 내 앞에 맥주 한잔이 놓이는데…. 음식이 마음을 치유한다면 음악은 마음을 살게 한다.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 나왔다.
김중혁의 <모든 게 노래>는 그가 <씨네21>에 연재한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와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를 묶은 책이다. 매주 한 꼭지씩 초콜릿 상자를 탐하듯 야금야금 읽을 때와 사뭇 다른 맛을 내는 모둠이 되었다. 그의 칼럼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이 책을 받자마자 내가 알던 글들과 뭐가 다른가 눈에 횃불을 켜고 들여다봤는데 묶은 순서 덕인지 처음 읽는 듯 맛깔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따라 음악의 글을 나눠 실었고, 권말에는 ‘가을과 겨울에 어울릴 만한 노래’라는 보너스 트랙이 두툼하게 더해졌다.
그래서, 처음 원고와 달라진 게 없냐고? 눈에서 횃불을 끄기 전까지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몹시 애매하지만 결정적인 수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다음과 같다. 가장 크게는 제목이 달라졌고, 그다음으로는 그 글이 주로 다루는 가수와 곡명이 빠져 있으며, 종종 글의 마지막에 첨삭이 있다.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노홍철과 짝을 이루는 장미여관의 <봉숙이>에 대한 글 ‘무까끼하이!’는 ‘사는 게 이런 기가’로 제목이 바뀌었고, “사투리 쓰는 게 뭐가 나빠! 아, 제가 괜히 울컥했군요. 죄송합니다. 이래봬도 저, 마음만은 ‘턱별시’입니다”로 끝나던 원문에서 “이래 봬도 저, 마음만은 ‘턱별시’입니다”가 빠졌다. 유머를 날려놓고 뒤늦게 소심해지는 김중혁의 난처한 얼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마지막 대목을 수정한 글의 예를 또 하나 들자면, 바비빌의 노래에 대해 논하며 원래 썼던 “바비빌 앨범 재킷 속 맥줏집으로 뛰어들어가 시원하게 병맥주 한잔 하고 싶다”가 책에는 한 문장 더해 실렸다. 그 문장은, “생맥주를 조금 더 좋아하긴 하지만”. <모든 게 노래>를 듣고 심야식당의 음악 마스터가 쓴 책 같다고 느낀 이유는 그런 미묘한 첨삭에 있었다. 문장이 더해지고 빠져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술 한잔, 한숨 한번, 웃음 한번에 끝맛이 변한다.
다 떠나서, 이 책이 소개하는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늘어놓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내가 아껴 듣던 곡을 다른 누가 이렇게 살뜰한 마음으로 귀히 여겨가며 듣고 있었구나 알게 되어 즐겁기도 하고, 아예 처음 들어보는 곡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큼 음악에 대한 글을 혐오하는 종족은 또 없지만, 김중혁의 이 문장들만큼은 공유하고 싶다. 음악을 지식에 맞춰 재단하는 대신, 수군거리고 쑥덕거리며 정서를 공유하는 마음이 묻어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