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개봉한 <킥애스: 영웅의 탄생>(감독 매튜 본, 이하 <킥애스>)이 흥미로웠던 것은, 코믹북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에 대한 영화이면서 사실 슈퍼파워를 가진 히어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니었나 싶다. 슈퍼히어로를 어설프게 흉내내다, 얼떨결에 (여전히 슈퍼파워는 없는) 슈퍼히어로가 된 고등학생 이야기를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가며 그려낸 이 영화는 매우 폭력성이 짙었으나 동시에 날카롭게 웃기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대중 앞에 속편 <킥애스2: 겁 없는 녀석들>(이하 <킥애스2>)이 공개됐다.
‘힛 걸’이라는 정체를 숨긴 채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 민디(크로 모레츠)는, 여전히 또래 여학생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총과 칼을 휘두르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소녀다. ‘킥애스’ 데이브(애런 존슨)가 매일 아침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타고 혼자만의 훈련장으로 향하는 그와 우연히 함께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민디는 히어로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이는 데이브를 훈련시키다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민디의 보호자 마커스(모리스 체스트넛)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민디는 더이상 힛 걸로 살지 않기로 한다. 이에 데이브는 스타스 앤 스트라입스 대령(짐 캐리)을 리더로 하는 ‘정의의 팀’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데이브는 악당 머더 퍽커(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민디는 ‘정의의 팀’에 합류해 머더 퍽커와 그를 따르는 악당들과 세기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지난 8월5일, 영국 런던의 클라리지스 호텔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기자 간담회 행사를 통해 속편을 처음 본 기자들이 내린 평가는, 안타깝게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야기의 결이 너무 거칠고, 103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민디가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려는 에피소드 같은 불필요한 부분에 지나치게 공을 들여 지루하다는 불만이 나왔다. 원작이 가졌던 독특하면서도 위트가 가득했던 설정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해 감독 제프 와드로는 “속편이라고 해서, 원작의 정서를 모두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이번 작품에 “원작의 주요 포인트를 따르면서도, 속편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정서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 크로 모레츠, 제프 와드로 감독(왼쪽부터).
복원이나 복제는 싫었다
제프 와드로 감독, 크로 모레츠,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 인터뷰
-흥행에 성공한 1편 외에 원작 코믹북까지 있어 다른 영화의 속편 제작보다는 두배로 힘들었을 것 같다. =제프 와드로_솔직히 말해서, 원작 코믹북이라는 든든한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매튜 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1편을 정말 사랑하고, 동시에 코믹북도 좋아하는데, 그래서 더욱 원작의 이미지를 ‘복원’한다거나 원작의 이야기를 ‘복제’하고 싶지 않았다. 원작자 마크 밀러 역시 나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각색해도 좋다고 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원작과 1편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한계에서는 무척 자유로웠다고 생각한다.
-코믹북을 각색하면서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제프 와드로_사실 원작 속 힛 걸은 여전히 11살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크로는 이제 16살 소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크로가 성장하는 모습, 현실세계에 어울리려는 노력 등을 넣기로 했다. 사실 힛 걸이라는 캐릭터는 다소 단조롭지 않나. 칼을 휘두르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나는 이들이 ‘슈퍼히어로’가 되려는 욕망과 그 안에 있는 ‘평범함’에 대한 열망을 함께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크리스나 데이브의 평범한 삶의 모습,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성장기 청소년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영화에 함께 녹여내고 싶었다.
-3편 제작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나. =제프 와드로_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3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3편이 제작되려면 명료한 엔딩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나는 내 작품에 정확히 시작-중간-끝이 있기를 바랐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작품 안에서 성장하고 변화하기를 원하는데, 이는 명료한 엔딩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힛 걸을 연기하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크로 모레츠_11살 때 처음 연기했던 작품과 그 캐릭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좀 특별했다. 배우는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새로운 영화에서 새로운 캐릭터와 만나게 되는데 그러면서 예전 캐릭터는 점점 잊혀져간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11살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영화 속 민디는 힛 걸이 되면서 평범한 소녀의 삶을 잃었다. 당신도 할리우드에 배우로 데뷔하면서 평범한 유년기를 잃게 되었는데, 속상하거나 아쉽지는 않나. =크로 모레츠_글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에 데뷔하면서 나는 더 멋진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역사책 속에 있는 사건들에 직면하기도 했고,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체험하기도 했다.
-힛 걸과 이 작품이 가진 폭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크로 모레츠_현실을 그대로 그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영화와 현실을 헷갈리기 시작한다면 디즈니의 <포카혼타스>도 위험한 작품이 아닐까? 디즈니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디즈니의 공주라고 착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또한 <양들의 침묵>을 보면서 자신이 연쇄살인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힛 걸의 액션 신을 소화하려면 꽤 강도 높은 사전 트레이닝이 있었을 것 같다. =크로 모레츠_<킥애스2>와 <캐리> 촬영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바람에 이 작품의 액션 신을 촬영할때 따로 트레이닝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음… 사실 <킥애스2> 촬영은, ‘몸이 기억하는 바’에 따랐던 것 같다. 촬영 초반에 했던 트레이닝으로는 약간의 복싱 수업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처음 <킥애스>를 찍었을 때의 기억이 대부분 돌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감독님의 큐 사인과 함께 정확하게 날아올라 발차기를 할 수 있었다. (웃음)
-<캐리>도 곧 개봉하는 걸로 알고 있다. ‘캐리’와 ‘힛 걸’을 동시에 연기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크로 모레츠_<캐리> 촬영을 하면서, 두달간은 돼지 피와 함께 지냈던 것 같다. 가죽 옷을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힛 걸과는 전혀 다른, 무거운 캐릭터가 바로 <캐리>였는데, 덕분에 오히려 힛 걸에 좀더 감성적인 부분을 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킥애스2>에 다시 출연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_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1편이 나온 뒤 이미 3~4년이 흘렀기 때문에 <킥애스> 출연진 중 누구도 속편이 제작될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매튜 본 감독이 <킥애스2>의 극본과 감독을 맡아줄 사람을 찾았다고 했을 때 정말 놀랐고, 기대됐던 것 같다.
-영화 속 의상은 마음에 들었나.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_음… 내가 돌아가신 엄마의 옷을 입는 장면은 촬영할 때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웃음)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는 옷인데, 사실 너무 조여서 많이 불편했다.
-짐 캐리와의 작업이 매우 즐거웠다고 들었다. 앞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다른 배우가 있다면. =크리스토퍼 민츠 프래지_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다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행운을 조금 더 바란다면(웃음), 마틴 스코시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