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급히 미끄러지는 스케이트보드를 뒤따라간다. 보드를 탄 주인공이 멈춰서 맨발로 들어가는 곳은 구정물이 고여 있는 화장실. 화장실의 변기에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영화는 스케이트보드 주인의 얼굴을 비춘다. 그녀의 문제는 바로 항문질환이다. 급히 화장실을 찾은 이유는 가려움증을 못 견뎌 연고를 바르기 위해서다. 웬만한 비위가 아니면 참기 힘든 장면 중 하나다.
2008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샤를로테 로쉬의 소설 <습지대>(Feuchtgebiete)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 8월11일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던 이 문제작은 8월22일 독일에서 개봉했다. 18살의 헬렌 메멜(카를라 주리)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졸음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항문 부위쪽 면도를 하다가 병원에 실려간다. 이혼 가정 자녀인 헬렌은 자신의 입원을 계기로 부모의 사이가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한편 헬렌이 병원의 남자간호사에게 반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논란이 된 소설 속 성행위와 관련된 내용은 상당 부분 생략했다.
<습지대>를 연출한 다비트 브넨트는 <컴뱃 걸스>(2011)로 데뷔한 신인 감독이다. 네오나치 그룹에 속해 있던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컴뱃 걸스>는 뮌헨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그의 신작 <습지대>에 대해 주간 <슈피겔>과 공영 방송 <체데에프> 등 독일 언론들은 원작 소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구토를 유발하는 소재와 이야기의 가볍고 유쾌한 정서를 잃지 않고 풀어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영화 <습지대>의 원작인 샤를로테 로쉬의 동명 소설은 영페미니스트의 자기 신체에 대한 긍정, 탐구, 노골적인 신체부위와 성 관련 묘사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빚었다. 소설의 70%가 자전적인 내용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소설 <습지대>를 출간할 당시 로쉬는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과장된 위생과 외모에 대한 기준 등에 반기를 들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설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솔직한 서사 방식과 사회 금기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참신하나, 거칠고 투박하며 이야기 구조가 너무 단순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