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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님의 침묵
이영진 2013-09-23

임검(臨檢). 직접 현장에 내려가서 검사한다는 뜻을 지닌 행정용어다. 추진하는 시책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가를 관리 감독자가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극장에도 임검 제도가 도입됐는데 1920년대 초부터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각 지역에 내린 ‘흥행취체규칙’에 따르면, “권선징악의 취지에 반하거나 범죄방법, 수단을 유치조성할 우려가 있”거나 “외설 또는 참혹하거나 풍교를 해할 염려가 있”거나 “시사에 관해 심하게 풍자하거나 정담(政談)이 분분하”거나 “민심의 융화를 저해할 우려가 있”거나 “위생상 유해하다고 인정되”거나 “공안이나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는” 활동사진은 흥행(상영)할 수 없으며, 만약 이를 어길 시엔 “임검 경찰 관리가 그 흥행을 정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도 극장주들은 감시자들을 위한 임검석(臨檢席)을 상영관 안에 따로 마련해야 했다.

잘 쓰지도 않는 낡은 단어 ‘임검’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잘 알 것이다. 메가박스가 개봉 이틀째인 9월7일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자 정지영 감독은 “‘현대판 임검석’의 부활”이라 소리 높여 비판했다. 메가박스는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로 인해 관람객간 현장 충돌이 예상되어 일반관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배급사와의 협의하에 상영을 취소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관객 안전을 상영 중단 이유로 내세우긴 했으나 메가박스가 내놓은 해명은 명쾌하지 않다. ‘경고의 호각’을 분 이들의 실체는 뭘까. 실제로 외부 단체의 협박이 있었다 치자. 메가박스는 상영 중단이라는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수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극장이 영업을 방해한 이들을 엄호하고 묵과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더 큰 화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인가.

“극장은 조선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일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으로서 잠재적인 불온성을 내재하고 있었던 데다가, 이곳에서 ‘위장된’ 혹은 ‘잠재적’ 집회로 간주되는 종류의 흥행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엮어낸 <식민지 시대의 영화 검열, 1910-1934>(2009)에서는 1920년대 들어 조선총독부가 임검 실시 등과 같은 더 강력한 이중 검열을 시행한 까닭을 불온한 영화로 인해 불온한 자들의 불온한 사상이 활개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한다. “국민이 어리석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위험한 영화다라고 판단을 하는 거다”(정지영), “<천안함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가장 큰 핵심 중 하나가 국론 분열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백승우). 이번 호에 실린 정지영, 백승우 두 감독과의 대화는 ‘현대판 임검석의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를 일러줄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비틀어 이 사태를 바라보고 싶다. 복종하는 자의 침묵은 권력의 독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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