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새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얼굴이 무척 삭았다. ‘그런 모임이 없었다’고 했다가 ‘모임은 있었지만 그런 발언은 없었다’더니 급기야 ‘발언은 있었지만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꾸는 걸 보며 그간 이 대표가 보였던 영민함과 당당함은 어디로 갔나 싶었다. 공당 대표의 기자회견이 아니라 억지스런 변명이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이석기 세력’을 털어내라고 주문하지만, 그럼 그 당에 누가 남을까.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진상을 조사하자는 내부의 목소리마저 ‘분파주의’로 매도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비록 지금은 갈라섰지만 정의당과 노동당 사람들은 짧지 않은 시기 어떻게 이들과 함께했는지 새삼 존경스럽다. 아주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국정원 못지않게 ‘셀프 개혁’이 불가능한 집단이다.
‘녹취록’에 나왔다는 이 의원과 참가자들의 발언은 거의 ‘방언’ 수준으로, 간증모임에서나 나올 법한 과장과 망상이 어우러져 있다. 굳이 몸싸움을 벌여가며 “진실의 승리” 운운하는 모습도 딱하다. 법정이 아니라 병동에 가야 한다는 얘기가 무리가 아니다. 먼저 구속된 이의 컴퓨터에 화학용어들과 사제폭탄 제조법이 적혀 있었다는데, 이 또한 놀랍지가 않다. 벽장에 재료를 쌓아놓지 않은 한 말이다.
내부자를 통한 녹음(영상도 있겠지)과 감청, 미행 등이 국정원이 벌인 내사의 대부분이고 압수수색으로 얻은 추가증거도 이 수준이라면, 아, 너무 쉽게 해먹는 거잖아. 이런 ‘프락치 공작’의 결과를 들이대며 대공 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권을 계속 갖겠다고 시위하는 걸 보니, 자기 보위를 위해 ‘유명하게 헌신’하는 국정원을 정말 이렇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거듭 든다. 설익은 정도를 보건대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마지막 카드가 아닐까. 기나긴 세월 일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던 두 집단이 패를 다 까버렸다. 밑천도 드러났다. ‘적대적 공생’은 끝날 때가 됐다. ‘일타쌍피’의 결과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