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과를 졸업한 선희(정유미)는 미국 유학을 떠나기 위해 추천서를 부탁하러 학교에 들른다. 재학 시절 자신을 예뻐했던 교수 동현(김상중)을 만나고, 연이어 과거에 관계가 있었던 남자 둘과 차례로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바로 그녀와 같은 학과에서 공부했던 문수(이선균)와 문수의 선배 재학(정재영)이다. 선희는 교수를 포함한 세명의 남자에게 자신에 관한 제각각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각자 그녀를 판단하고 정의내리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녀를 진정으로 알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홍상수의 신작 <우리 선희>는 선희를 둘러싼 세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관객은 선희가 직접 알리는 자신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반응을 통해 그녀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선희는 1, 2년 전 대학을 졸업했으며,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하지만 내성적 성격으로 조금 어려울 것 같아 보이고, 마음먹고 잠수를 타면 연락이 닿지 않는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이날 선희가 모두의 앞에 나타난 것은 ‘추천서’라는 매개를 통해서다. 홍상수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몇줄의 글로 그 사람에 대해서 정리하고 판단한 문서’인데, 이처럼 우리는 어느 사람의 견해가 특정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영화는 흔히 주변에서 생기는 이런 경우의 극단적 일면을 제시해준다. 전혀 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인물들이 반복한 ‘내성적’이란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각인되고, ‘파고들다’라는 동사는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각자가 스스로 꺼내놓은 말처럼 치장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선희가 받아든 두 번째의 좋은 추천서를 마냥 기쁘게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역시 실제의 그녀와 무관한, 주변의 억지 정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66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