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영상인프라 조감도. 영화진흥위원회가 10월25일 부산으로 이전한다. 새로운 사옥과 대형 스튜디오를 건립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부산 시대를 연다. 이전 정부가 추진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계획에 따라 10월25일 부산으로 이전한다. 10월28일부터 사상구에 위치한 경남정보대학교 센텀 산학캠퍼스 건물의 13, 14층 두개층을 임대해 업무를 보게 된다.
이전 날짜가 두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부산을 향한 영진위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인다. <씨네21> 920호 한국영화 블랙박스 ‘돈을 어이할꼬’에서 밝혀진 대로 이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영진위는 부산에 새로운 사옥과 대형 스튜디오를 건립할 계획이다. 일단 사옥 건립에 고려하고 있는 비용은 621억원이다. ‘글로벌 영상인프라 건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부산 대형 촬영소는 스튜디오 5개동(1700평형, 1000평형, 700평형, 400평형, 300평형), 디지털후반작업시설, 제작지원시설, 편의시설, 야외세트장 등 촬영부터 후반작업까지 진행할 수 있는 여러 시설을 포함한 공간인데, 건립하는 데 무려 1906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영진위의 계획대로라면 총 2527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수도권 스튜디오 수요 문제는 어쩔 건가
필요한 경비가 어마어마하지만 영진위가 꺼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없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홍릉에 자리한 영진위 사옥을 수림문화재단에 매각하면서 165억원을 받았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역시 팔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9월6일까지 총 8차례 입찰을 통해 매각을 시도해왔지만 번번이 유찰됐다. 감정가가 1171억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인 데다가 남양주시가 수질 오염물질 배출 총량을 할당량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 그린벨트 지역인 까닭에 개발에 어려움이 따르 다보니 희망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남양주종합촬영소의 인수를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 포스코가 직원 연수원 건립을 위해 남양주종합촬영소 매입을 4달 동안 고려했지만 끝내 백지화한 것도 오염물질 배출 총량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팔린다는 전제로, 홍릉 사옥을 팔고 얻은 165억원과 남양주종합촬영소 1171억원 그리고 부산시가 지원하기로 한 280억원을 합쳐도 911억원이 부족하다. 남양주종합촬영소가 팔리지 않는다면 2082억원이 적자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에 글로벌 영상인프라 건립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신청한 영진위로서는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매각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실을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예비 타당성 심사를 통과해야 내년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금 조달 계획이 뚜렷한가’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매각 여부가 심사의 향방을 가를 만큼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매각을 전제로 영화발전기금으로부터 꺼낸 470억원과 부산시에서 지원받는 280억원을 합쳐 총 750억원을 확보했다는 카드를 영진위가 기획재정부와의 교섭에 가지고 가려는 것도 내년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 매각과 함께 영진위가 또 하나 고심하고 있는 부분은 글로벌 영상인프라 건립이 대전 HD 드라마타운 사업과 비슷하게 비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시가 2010년 유치한 대전 HD 드라마타운 사업은 2014년까지 총 885억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엑스포과학공원 내 부지(약 2만평)에 드라마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첨단영상제작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사업 계획 예산(37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7억원을 편성해 기획재정부에 올렸고, 건물 완공 시기도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감사원 재정경제 감사국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있는데, 글로벌 영상인프라 건립과 대전 HD 드라마타운이 문화부의 소관 사업이다보니 감사원은 두 사업의 중복성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다. 감사원은 가급적이면 두 사업을 축소하고 싶어 하고, 문화부는 두 사업 모두 계획대로 진행하고자 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영진위는 남양주종합촬영소 매각과 국고 지원금 확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영진위의 복잡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산시는 영진위의 부산 이전을 앞두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직원이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영화 행정기관이 내려오는 건데 부산시나 지역언론은 한국 영화산업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영진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 조직인지 아직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글로벌 인프라 건립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사업 공약이다. 부산시는 이 사업을 지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정치적으로 풀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 촬영소가 들어서게 될, 23만5천평에 달하는 기장군 달음산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한 탓에 촬영소 건립 비용이 애초에 영진위가 계획했던 470억원에서 현재의 1906억원으로 세배 이상 뛰어올랐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아직도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부동산 소유자가 많아 그들을 일일이 만나 매입을 진행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달음산 일대가 고리원자력발전소로부터 8km 내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해외 프로젝트를 유치할 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부산시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쉬쉬하는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 영화제작자는 “부산 촬영소는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할리우드 같은 규모가 큰 해외 프로젝트의 유치가 목표라고 들었다. 그런데 해외 프로젝트 유치 시 스튜디오 근처에 원자력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산 촬영소를 로케이션 장소로 선택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남양주종합촬영소가 매각되면 수도권에서 진행되는 한국영화의 스튜디오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하는 의견도 많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회장이자 명필름 이은 대표는 “영진위의 부산 이전, 남양주종합촬영소 매각, 부산 촬영소 건립 문제는 정부의 오랜 방침이라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다만, 최근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에 스튜디오 하나가 없어지는 건 다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에 고양, 파주 스튜디오가 있다지만 여건과 상황에 따라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진행할 때 효율적인 프로젝트들이 있다. 영진위가 부산 이전에 급급한 나머지 수도권 스튜디오의 수요 문제까지 신경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전주, 부산 같은 로케이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도 많기 때문에 수도권의 스튜디오 수요 문제에 대해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성과 중심주의부터 버려야
꼬일 대로 꼬인 이 문제들은 ‘돈을 어이할꼬’에서 최현용 전 제협 사무국장이 지적한 대로 새로운 사옥과 글로벌 영상인프라 건립을 포기하면 해결된다. 대형 스튜디오가 필요하다면 부산 촬영소를 건립하는 대신 수영만에 있는 스튜디오를 리모델링하거나 합리적인 가격대의 땅을 구해 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영상인프라를 건립해야 한다면 한국영화 진흥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에 쓰여야 할 영화발전기금이 아닌 부산시 예산이나 국고에서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영진위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이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결정, 논의되어왔다. 그리고 이미 신청한 예비 타당성 심사를 포기하는 건 공기관으로서의 위신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동”이라며 영진위가 글로벌 영상인프라 건립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영진위의 부산 이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관이 지역에 안착하고, 동시에 서울에 있는 많은 영화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영진위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대형 스튜디오 건립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이마저도 원활하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위원장 연임을 노리든 영화계나 학계로 돌아가든지 자리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성과를 내겠다는 영진위 김의석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영진위 안팎에서 새어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돌이킬 수 없다고 면책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해당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차기 영진위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 엄청난 부담을 안길 것이 분명하다. 차기 영진위 출범은 앞으로 반년도 남지 않았다.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내년 3월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될 영진위 위원장은 영진위의 부산 안착, 여러 지원 사업들의 안정적인 운영외에도 부산 촬영소와 새로운 사옥의 건립이라는 거대한 고민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많은 영화인들이 지금 영진위의 부산 이전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