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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우리 영화
이영진 2013-09-09

“(그들은) 영화가 정말 필요해서 영화를 만든다.” 홍상수 감독의 16번째 영화에 출연한 뒤 가세 료가 남긴 말이다(‘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913호 <씨네21> 씨네인터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구스 반 산트, 미셸 공드리,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리고 홍상수와의 작업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가세 료는 이렇게 답했다. “그들의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의 어떤 겸허함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모두 영화를 만드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영화가 영화에 그친다 하더라도…(중략)…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구원받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로 돈을 벌고 싶은 감독도 있고, 영화로 상을 받고 싶은 감독도 있고, 영화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감독도 있지만, 그들은 그런 감독들과 분명 다르다고 했다. 가세 료의 그 말이 심중에 오래 남았다. 얼마 전에 작은 대화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개인적인 취향을 캐묻는 자리는 아니라고 판단해서 얼마간 망설였는데 가세 료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영화가 정말 필요해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작품이라면 다 좋습니다.”

말은 그리 했으나, 영화가 정말 필요해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그걸 가려낼 식별의 눈을 갖고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또 머뭇거릴 것이다. 모든 영화는 모든 감독들의 간절함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가 반문한다면 그 역시 수긍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세 료의 신성한 교감을 터무니없는 과장이라고 깎아내리고 싶진 않다. 홍상수 감독은 이번호 특집에 실린 서면 인터뷰에서 정홍수 문학평론가의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떤 영화가 어떤 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어떤 영화가 그랬고요. 만드는 사람은 우선은 만드는 일에 대한 순수한 행위를 목표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일은 저절로 일어날 겁니다, 일어날 거라면.” 홍상수의 위로와 가세 료의 구원은 불가능한 순수인가. 고쳐 물어야겠다. 모든 이들에게 절실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호언보다 자신에게 절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기적을 빚어내는 데는 더 이롭지 않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곡사, 신연식, 김태영 등 추석합본호에서 소개하는 감독들도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만프레드 아이허도 있다!) 명절 연휴에 그들의 영화를 복용하시고, 좋은 기운을 심신에 가득 채우시길.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시즌2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휴식이 절실하다고 통보하고서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일러주는 필자를 볼 때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 등의 행사로 인해 ‘신전영객잔’은 10월 말까지 격주로 실릴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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