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성냥 가진 사람 있나요?”
20살짜리 배우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성숙한 로렌 바콜이 입에 담배를 물고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소유와 무소유>(1944)에서다. 데뷔작이고, 상대역은 필름 누아르에선 당대 최고였던 험프리 보가트였다. 그런데 빛을 쏘는 듯한 눈빛에, 남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담뱃불을 요구하는 당돌한 바콜의 모습은 웬만한 중견 배우의 포스, 그 이상이었다.
험프리 보가트와 담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온갖 인상을 쓰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의 아이콘이 됐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그 모습을 흉내냈을까. 제임스 딘도 보가트를 흉내낸 것 아닐까. ‘보가트처럼 대마초 피우지 마’(<Don’t Bogart That Joint>)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다(<이지라이더>의 삽입곡 중 하나). 보가트와 담배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으면, 이 노래에서는 스타의 이름이 동사가 됐다.
데이비스의 눈동자, 로렌의 시선
여성배우와 담배와의 관계를 꼽자면 아마 로렌 바콜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이는 전적으로 <소유와 무소유>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담배 한대 피우는 행위 하나가 순식간에 남자와의 관계를 수평으로,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여성상위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프로이트의 구순기라는 용어를 기억한다면, 바콜의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바콜의 담배’는 남녀 관객 모두에게 각자가 전유할 수 있는 매혹적인 의미를 풍부하게 제공했던 것이다.
<소유와 무소유>에서 두 배우는 담배를 피우며 첫눈에 사랑에 빠졌는데, 이런 허구의 상황은 실제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영화를 찍으며 두 배우는 진짜 사랑에 빠졌고, 1년 뒤인 1945년 결혼했다. 바콜은 20살, 보가트는 45살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같은 남편과 칭얼대는 딸 같은 아내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바콜의 담배 연기에 각인된 성숙한 이미지의 덕을 봤기 때문일 터다. 결혼과 함께 두 배우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고, 하워드 혹스는 다시 두 배우를 캐스팅하여 <빅 슬립>(1946)을 만들었다. 역시 필름 누아르인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보가트와 바콜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유와 무소유>의 담배 장면을 우려먹은 것인데, 그만큼 두 배우와 담배와의 관계는 운명적이었다.
로렌 바콜은 베티 데이비스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남성들을 압도하는 강렬한 열정에 매혹됐다. 바콜이 눈을 위로 치켜뜨며 남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시선은 별다른 형용사 없이 그냥 ‘시선’(The Look)이라고 부른다. 그 시선은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바콜의 것이란 뜻이다. 사실 이 시선도 데이비스를 흉내내는 과정에서 생겼다. ‘베티 데이비스의 눈동자’는 모두들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담배도 데이비스에게서 영향받았다. 데이비스는 <이브의 모든 것>(1950)에서처럼 실제로도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남성들과의 사이에서 거칠 것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데이비스의 개성은 담배로 보완됐는데, 그 담배를 영화적 이미지로 먼저 전용한 것은 후배인 바콜이었다.
허리케인에 맞서다
하워드 혹스와 험프리 보가트라는 두 거물과 두번에 걸친 협업을 통해 로렌 바콜은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을 때, 할리우드에 암운이 드리워졌는데, 바로 매카시즘의 도래다. 종전과 냉전을 맞아 민주주의의 기사 역할을 자임하던 미국이 불행하게도 급격하게 우경화되면서, 이른바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할리우드 내의 공산주의 동조자들을 전부 영화계에서 축출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바콜은 보가트와 함께 공개적으로 정부의 이런 행위를 비판했다. 종교,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수정헌법 제1조(The First Amendment)를 근거로 내세웠다. 이들은 존 휴스턴, 윌리엄 와일러, 캐서린 헵번, 스펜서 트레이시 등과 ‘미국수정헌법 제1조를 위한 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워싱턴의 의회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존 휴스턴은 “적들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나 적으로 만드는 마녀들이다”라며 미 의회의 활동을 비판했다.
존 휴스턴, 험프리 보가트, 로렌 바콜, 이들 세명이 팀을 이뤄, 매카시즘을 비판한 영화가 <키 라르고>(1948)이다. 부부가 함께 출연한 네 작품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세 번째는 <다크 패시지>(1947)). 플로리다의 남단, 아름답고 평화로운 키라르고 섬의 작은 호텔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허리케인이 불어와 호텔은 고립되는데, 하필이면 이때 여기를 찾아온 불청객이 갱스터들이다. 이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볼모로 잡고, 폭력을 행사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전쟁 같은 허리케인, 무력으로 사람들을 겁주는 깡패들, 그런 가운데에도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들(물론 보가트와 바콜)의 태도를 통해 동시대를 비유한 필름 누아르다. 말하자면 불행한 시대를 맞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남편인 보가트와 연속으로 출연한 필름 누아르 네편을 통해 바콜의 페르소나는 굳어졌다. 보가트 같은 남성영웅을 한순간에 서늘하게 만들어버리는 ‘시선’, 그리고 보가트와 오래된 친구처럼 담배를 나눠 피우는 남녀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 그런 데서 전달되는 중성적인 이미지 등이 복합적으로 바콜의 개성을 만들었다. 상대가 여성들을 압도했던 보가트였기에, 바콜의 이미지는 더욱 효과적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필름 누아르를 떠나서는 과거와 같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억에 남을 작품으로는 더글러스 서크의 <바람에 쓴 편지>(1956)가 있는데, 바콜의 이미지는 멜로드라마의 마조히스트로는 어색해 보였다.
<키 라르고> 이후 부부는 함께 출연한 작품이 없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보가트가 현장에서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 점이다. 이유는 자기만큼이나 자유분방한 바콜의 이성관계 때문이었다. 니콜라스 레이의 <고독한 영혼>(1950)을 찍을 때, 보가트와 레이는 자신들의 아내들(니콜라스 레이의 아내는 여배우인 글로리아 그레이엄)의 남성편력 때문에 서로에게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영화 속에서 남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행동하던 로렌 바콜의 이미지는 결코 허구에서만의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보가트가 담배 때문에 식도암으로 죽을 때까지 대중 앞에선 별 문제 없는 부부로 함께 살았다. 그 영웅에 그 여걸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