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단지 안 분수대 근처는 바람이 잘 모이는 곳이라 꼬마들의 좋은 놀이터다. 너른 잔디밭이 있고 한가운데 넙데데한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제법 운치있다. 어느 날 잔디밭 둘레에 쇠 펜스가 쳐졌다. 애들이 잔디밭을 넘나들고 나무에도 올라탄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관리사무소에 요구했다고 한다. 안전 때문이 아니라, 비싼 나무가 망가진다는 이유였다.
이석기 의원실 등에 대한 국정원 주도의 압수수색 혐의는 내란음모 등이라는데, 내용을 보다 보니 잔디밭을 막아버린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형법에서 정하는 ‘내란’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이다. 공유지에 대한 거주민들의 ‘주권 행사를 배제’하고, 안건으로 올렸다는 안내 하나 없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공론을 모을 ‘기능을 소멸’시켰으며, 잔디밭에 나와 고함을 지르거나 관리사무소장을 들들 볶는 식으로 정상적인 아파트 관리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분수대 근처의 ‘질서를 파괴’했고 아이들 풀어놓고 한숨 쉬던 양육자들의 평화를 해쳤다. 어르신들이 그럼 내란?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시기도 내용도 의심스러운 국정원의 공안몰이를 보며 내란음모니 예비니 하는 것들이 공권력에 의해 얼마나 마음대로 덮어씌워질 수 있는지 새삼 느껴서다. 김대중처럼 독재에 명백한 위협이 되거나 전두환처럼 탱크를 밀고 들어와줘야, 말 되는 게 ‘내란’자 붙은 죄목 아닌가. 이석기 의원이 그 급은 누가 봐도 아니잖아. 이런 사람을 때마침 국정원 수사권과 국내파트 폐지•축소 요구가 거셀 때 몇년간 조사한 결과라며 때려잡자 나서니, 그런 위험한 인물이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는 뭐 하고 있었나. 국정원의 무능과 예산 낭비에 대해 환기하게 된다. 영장에 담겼다는 유류시설 장악, 통신 파괴, 무기고 습격 따위의 표현은 무섭다기보다는 코믹하게 다가온다. 느낌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