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메테우스>에는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안드로이드 데이빗이 나온다. 인간 탑승자들이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어 있는 동안 데이빗은 모든 것을 돌본다. 마이클 파스빈더가 연기한 이 안드로이드는 매력적인 외모에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표현’하고 이해할 줄 알며 “요청받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데이빗의 탄생을 다룬 별개의 영상물이 제작되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데, 데이빗을 ‘감성적’(emotional)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고 프로메테우스호의 승무원이나 탑승객이 그를 인간처럼 대접하지는 않는다. 묘하게 각이 서 있는 말투와 행동 때문에 그가 인간이 아님을 수시로 인지하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데이빗이 인간처럼 행동할 때마다 혹은 인간처럼 질문을 던질 때마다 거리를 두려는 듯 데이빗에게 “너는 로봇, 나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말을 한다. 가끔은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다면 로봇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프로메테우스호의 선장은 탐사여행을 지휘하는 비커스에게 섹스에 대한 농담을 하다가 로봇이 아니냐고 묻고, 비커스는 인간임을 확인시켜주겠다는 듯 픽 웃으며 “내 방으로 와, 10분 뒤에”라고 말한다. 그런 장면들을 처음 볼 때도 그랬지만 다시 보면서도 궁금한 게 있었다. 데이빗 정도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움직일 수 있다면 섹스는 못할 게 뭐야? 나아가 데이빗이 인간이 아니라고 못박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는 표정을 짓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착시일까?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서 감정이 생겨날 수 있다면, 하는 발상에서 출발한 중편소설이다. 일종의 가상 애완동물인 디지언트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디지언트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맡은 애나와 그녀의 디지언트 잭스, 애나의 동료이자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데릭과 그의 디지언트들인 마르코와 폴로가 주인공들이다. 어디까지나 상품으로 개발된 디지언트지만 이들에게 말을 가르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발달 과정을 지켜본 애나와 데릭은 디지언트의 인기가 사그라지고 개발회사가 문을 닫은 뒤에도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한다. 잭스와 마르코, 폴로는 때로 로봇의 외형을 ‘입고’ 바깥출입도 할 수 있고, 더 크게는 ‘법인’이 되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디지언트에 대한 헌신은 정작 같이 지내는 배우자나 애인에게 인정받기 힘들고, 많은 경우 주인이 아이를 낳으면 디지언트는 ‘정지’되곤 한다. 영원히. 이 소설은 마치 아이가 성장하듯이, 한해 두해 시간이 가면서 디지언트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인공지능과의 애착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애착관계가 깊어지면 섹스를 원할 수도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다다른다. 테드 창의 질문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예의를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룬다. 금전적이고 감정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기꺼이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일을, 당신은 얼마나 잘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