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는 전투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82)의 삶을 뼈대로, 동시대 유명 소설가 호리 다쓰오(1904~53)의 자전적 소설 속 로맨스를 끌어와 극화한 작품이다. 관동대지진, 경제공황,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쓴 혹독한 시대를 겪으면서도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열망 하나로 온 힘을 다해 매진한 인물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인간의 꿈과 열정을 그리고 있다.
외형적으로 <바람이 분다>는 지브리 작품 중 가장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토토로, 포뇨 같은 요정 캐릭터가 아닌 처음으로 실존 인물, 그것도 어린이가 아닌 직업도 갖고 연애와 결혼도 하는 어른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시대극인 만큼 전작들에서 보여준 판타지 세상 대신 사실적인 배경이 주가 된다. 이 부분에서 관동대지진의 아비규환을 묘사한 광경은 지브리 기술의 집약체를 보여주는 스펙터클한 장면이다. 자연스러움을 살리고자 주인공 호리코시 역에 배우(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반적인 전문 성우 대신 배우를 목소리 연기에 캐스팅해왔다) 대신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를 캐스팅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지독한 비행기 마니아이자 일중독자인 호리코시의 삶은 마치 애니메이션 한 길에 평생을 바친 73살의 거장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 진한 울림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호리코시가 만든 ‘아름다운 꿈의 결정체’인 제로센이 당시 진주만 공습과 가미카제 특공대의 전투기로 사용된 점은 영화 밖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전쟁 미화’라는 세간의 시선 앞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한 의도는 다소 왜곡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전투기 쓰임새에 대한 호리코시의 고민은 확실히 <붉은 돼지>의 ‘포르코’가 보여주었던 반전정신만큼 치열하진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