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 10년 전쯤일까, 고학생이던 그는 공원 등지의 쓰레기통에 쌓인 빈 캔과 병들에 눈이 갔다. 자원 재활용 강국인 독일에서는 당시에도 이런 것들에 적지 않은 값을 쳐줬는데, 부지런히 움직이면 생계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던 어느 한여름, 깡통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더 일찍 나가봤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의 ‘작업’을 눈여겨보던 노숙자들이 너도나도 뛰어든 것이다. 새벽같이 나가야겠다 다짐하다가 문득 먹고살기 힘든 노인들 벌이를 빼앗는 것 같아 관두었단다.
일개 고학생의 마음도 이럴진대 고물 주워 생계 잇는 이들의 생업을 하루아침에 빼앗는 일이 정부 주도로 벌어졌다. 일정 부지 규모(2천㎡, 특별/광역시는 1천 ㎡) 이상의 고물상은 폐기물 처리 신고를 의무적으로 하고, 분뇨나 쓰레기 처리 시설을 둘 수 있는 잡종지에서만 고물상을 할 수 있도록 한 개정 폐기물관리법이 지난 7월24일부터 시행되었다. ‘고물상 재벌’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한마디로 고물상들은 도시에서 나가라는 소리이다.
재활용 쓰레기들은 주로 주거/상업 지역에서 나온다. 일찍이 이곳에 자리잡은 소규모 고물상들은 터를 옮기기도 힘들뿐더러 시외로 이전해도 물류비가 늘어나 수지가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골목이나 거리를 돌며 폐지나 빈병 등을 주워 파는 이들은 대책이 없다. 리어카나 유모차 끌고 외곽순환도로를 탈 순 없지 않은가. 전국적으로 소규모 고물상은 7만여곳, 폐지 등의 수집인은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집인들은 대부분 극빈층 노인이나 장애인들이다. 어느 업종이나 집단에서 이렇게 속수무책 당할까.
도시 미관이 걱정된다지만 당장 이들이 일손을 놓으면 거리와 골목부터 망가진다. 지원하고 관리하면 고물도 보물이 된다. 창조적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