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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에반스] 나는 직진한다
주성철 사진 최성열 2013-08-12

크리스 에반스

<설국열차>에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 꼬리칸, 그곳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긴 세월 준비해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고 절대권력자 윌포드를 굴복시켜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열차칸의 문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그를 기다린다. 플래시백도 없이 오직 직진만 거듭하는 이 게임과도 같은 영화에서 크리스 에반스는 뒤돌아보지 않는 불굴의 주인공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모두가 자기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숙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력에 대한 욕구와 모두를 돌보고자 하는 자애로운 마음, 그리고 과거로부터 비롯된 죄책감과 수치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복합적인 인물이지만 약한 모습을 절대 내비칠 수 없는 고단한 리더의 운명”이 바로 그가 얘기하는 커티스의 핵심이다.

이쯤에서 그가 연기한 수많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스쳐 지나간다. 먼저 <설국열차>에서 ‘불’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 그의 팬들이라면 <판타스틱4>(2005)를 떠올렸을 것이다. 속편인 <판타스틱4: 실버 서퍼의 위협>(2007)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유자재로 불을 다루는 ‘불꽃 남자’ 자니 스톰이었다. 화려한 불길과 함께 하늘을 날던 캐릭터였으니 설국열차의 닫힌 문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도끼와 망치를 들고 복면을 쓴 수십명의 적들이 난데없이 등장했을 때도 <퍼스트 어벤져>(2011)와 <어벤져스>(2012)의 슈퍼 솔저 ‘캡틴 아메리카’였다면 ‘히드라’ 조직원들을 주먹과 방패로 박살내듯 쓸어버렸을 것이다. 홍콩을 배경으로 했던 <푸시>(2009)에서도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염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처럼 주요 필모그래피의 절반 가까이에서 이른바 ‘초능력자’로 등장하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슈퍼히어로 코믹스보다는 <톰과 제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소년의 미래가 이러할 것이라고는 그 역시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설국열차>에서는 불(<판타스틱4>)과 방패(<퍼스트 어벤져>)를 버리고, 철저히 ‘불완전한 개인’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말하자면 <설국열차>에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사람’이 됐다. 실제로 그는 현장에서 “난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난 철저히 인간이다”라며 마인드컨트롤을 거듭했다. 엔진으로 향하면서 겪게 되는 피로와 무력감은 ‘직진’과 ‘실시간’이라는 <설국열차>의 드라마에서 무척 중요하다. 당연히 애초의 투쟁심도 옅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과거 기차에서 벌어졌던 몇번의 굵직한 봉기의 순간,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실패의 기억이 엄습해온다. 바로 그런 순간에 윌포드의 유혹과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지나온 열차칸을 되돌아보게 된다. “커티스는 지금껏 내가 연기한 인물들 중 가장 어두운 캐릭터다. <설국열차>는 내가 배우로서 어떤 ‘심연’을 경험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내 그가 즐겨 사용한 단어는 ‘particular’다. 감독에 대해, 영화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계속 빠지지 않는 단어였다. 그만큼 <설국열차>는 그에게 ‘특별한’ 영화로 남았다.

크리스 에반스의 최근 행로는 무척 흥미롭다. 1981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이른바 ‘엄친아’스러운 길을 걸어왔던 그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돌연 뉴욕으로 떠났다. 이후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그 스스로 말하길 ‘창피하고 끔찍한 몇몇 작품들’을 거친 다음 <판타스틱4>와 <선샤인>(2007)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 달라진 위상의 키워드가 ‘캡틴 아메리카’였다면 이제 그는 <설국열차>를 전후로 변신을 꿈꾸고 있다. <펑처>(2011)의 마약 중독 변호사에 이어 <아이스맨>(2012)에서 악명 높은 실존 킬러 리처드 커클린스키(마이클 섀넌)의 동료 킬러, 그리고 <설국열차>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그는 곧 연출에도 도전한다. 흥미롭게도 “두 남녀가 기차에서 만나 밤새 뉴욕을 돌아다니는, <비포 선라이즈>(1995)의 뉴욕 버전 같은 영화”다. 현재 출연 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의 직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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