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그러지 맙시다
이영진 2013-08-05

오래 알고 지냈던 취재원이 <씨네21>에 놀러왔다. 영화인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지만 영화계 대소사라면 누구 못지않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이다. 관련 지식 또한 많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스크린 독과점에 관한 포럼 발제문을 뒤늦게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 포럼 참석자들이 누구였고 뭐라 발언했는지를 귀밝은 그에게 흘려줬다. 그리고 슬쩍 떠봤다. “한동안 잠잠하던 분들이 슬슬 나서기 시작하네요. 위원장을 그렇게 하고 싶나?”라고. 요 몇년 사이 영화계와 거리를 두고 있던 그인지라 별다른 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글쎄. “어디 그 사람들뿐이야. OOO씨는 그 두 사람보다 자기가 더 깨끗하지 않냐며, 자기야말로 진짜 친박이라고 자신하던데~.”

김의석 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새 위원장을 뽑기까지 6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그들이 영화계 이슈와 논쟁에 끼어들어 의견을 제시한 것 자체를 흘겨보는 건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누구든 주장할 수 있다. 무리한 시장 개입은 혼란을 야기한다고 누구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이들이 전임 영진위 위원장이라면, 그것도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고 불명예 퇴진한 이들이라면, 제쳐뒀던 의심과 우려를 다시 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영진위 위원장 시절, ‘한국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해 도대체 뭘 했는가. 그랬던 그들이 하필이면 이 시점에 깜짝 등장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도대체 누가 OOO 형아랑 OOO 형아 봉인해제한 거야?!”(그 형아들이 누군지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씨네21>은 2002년 5월 영화 관계자 68인을 대상으로 ‘영화진흥위원, 누가 되어야 하나’라는 여론조사를 벌인 적 있다. 당시 몇몇 영화인들은 추천인 거명에 앞서 절대로 영진위 위원(장)이 돼선 안될 부류를 언급했다. “공공적 원칙과 공익적 명분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뿐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 “창작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 기여해온 사람”, “뚜렷한 주관이 없어서 외압에 타협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 등이다. 10년도 더 됐으나 이 가름의 기준이 유효하고 절실하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영진위 새 위원장이 꼭 누구여야 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으나 누구여선 절대 안된다는 확신은 분명하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쓴 국정원의 대선 개입 규탄 성명서를 읽은 적 있다. 만약 전국의 영화과 교수님들이 한데 모여 시국선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영화계의 불합리를 향한 교수님들의 비판과 조언을 삐딱하게 곡해하지 않고 기꺼이 선의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