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를 하루 앞둔 7월23일, 길고 긴 장마만큼이나 길고 긴 장마/수해 보도에 이어 제일 먼저 나온 KBS 뉴스는 ‘비 오는 날 회 먹어도 된다’였다. 이날은 문재인 의원이 “NLL 논란 끝내자”고 제안한 날이자(이런 제안을 기자회견조차 하지 않고 트위터에 날린 그 이상한 낯가림과는 별개로), 국가기록원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는 걸 최종 확인한 다음날로 실종 미스터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25일에는 경찰 사이버 수사팀에서 댓글 수사 다 해놓고도 은폐한 정황을 보여주는 CCTV 영상이 공개됐건만, 아니나 다를까 여야 의원들 입씨름만 모아놓고 ‘경찰 개입 여부 여야 공방’이란다. 애용하던 CCTV 영상은 보여주지도 않았다(한동안 CCTV에 찍힌 멧돼지 출몰 아니고는 볼 게 없지 않았나). 국정원의 국기문란 행위를 다루면서도 그저 난타전, 신경전, 공방이다. 모든 쟁점을 여야 공방으로 만들어버리는 가공할 ‘공방신기’이다.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은 흔적도 없다. 서울 도심에서 2만여명이 모이는 규탄집회가 열려도 촬영조차 나가지 않는다.
실종된 것은 국정원의 무단 정치개입만이 아니다. 방송으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은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를 우리 정부가 미국쪽에 또다시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한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기들 국방예산 축소 등을 내세워 큰 폭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어디다 쓰는지 모를뿐더러 안 쓰고 쌓아둔 돈만 해도 올해를 거치면 1조원이 넘는데 그나마 모두 미국 것이다. 이거야말로 사실상 ‘조공’으로 비판하거나 ‘논란’으로라도 다룰 일 아닌가.
이명박 정부 5년간 망가진 것은 4대강만이 아니다. 언론, 특히 지상파 방송의 몰락/참사 현장을 우리는 이렇게 매일 생생하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