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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라는 종교의 땅 미국에 관한 어떤 초상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계기로 돌아본 하모니 코린 스토리

미국 인디영화계의 악동, 하모니 코린이 돌아왔다. 파격의 데뷔작 <검모>와 <줄리앙 동키 보이> 등의 영화로 90년대 미국 평단을 술렁이게 한 그의 시선은 현재 비키니를 입은 해변의 10대 미국 소녀들에 머물러 있다. 7월25일 개봉하는 하모니 코린의 신작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통해 그의 영화세계를 되짚어봤다.

1997년, 스물세살의 앳된 청년이 <검모>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R등급(17세 미만은 성인 동반하에만 관람 가능)을 받은 이 혼란스럽고 거북한 영화는 그해 <뉴욕타임스>가 뽑은 최악의 영화가 되었지만, 다르게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베르너 헤어초크와 구스 반 산트, 라스 폰 트리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20대라기보다는 10대처럼 보이는 가냘픈 청년의 영화에 반해 그를 천재라고 칭송했다. 열광과 혐오 사이 또는 모 아니면 도. 극단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젊은이는 이후 도그마 영화인 <줄리앙 동키 보이>를 비롯한 몇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당연하게도 나이를 먹어 이제는 젊음의 후광을 걷어낸 마흔살이 되었다. 그는 하모니 코린, 충격적인 10대 영화 <키즈>를 쓴 꼬마 작가, 어리고 되바라지고 방탕한 청년, 어떤 이들에겐 조숙한 천재. 그가 돌아왔다. 캔디처럼 달콤한 디즈니 소녀들을 거느리고 프리스타일 랩을 하듯 독백하면서 <스프링 브레이커스>로 청춘의 시절에 복귀했다.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여자와 총이 전부”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그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랜드피아노 한대를 추가한다면 <스프링 브레이커스> 같은 영화가 나올 것이다. 목적도 없이 몇년 동안 “비키니 입은 여자들이 가득한 봄방학(스프링 브레이크)의 이미지와 영상을 수집하다가 그 아래 숨은 천진한 얼굴에 끌렸”던 코린은 그것들로 단순하고도 충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하모니 코린 감독.

논리를 들이대는 순간 허물어지는

탬파에 있는 대학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캔디(바네사 허진스)와 브릿(애슐리 벤슨), 페이스(셀레나 고메즈), 카티(레이첼 코린)는 봄방학이 되어 해변으로 떠날 날만 고대한다. 하지만 학기 내내 모은 돈을 모두 털어도 탬파를 떠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네 소녀는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처럼, 영화에라도 출연한 것처럼” 복면을 쓰고 가짜 총과 망치를 들고 동네 식당으로 쳐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술과 마약이 흐르는 방탕한 날들. 마음껏 놀다가 마약 소지죄로 체포된 소녀들 앞에 에일리언(제임스 프랭코)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그들을 구해주며 유혹적인 제안을 던진다.

해변의 누아르라도 찍을 것 같은 줄거리지만 <스프링 브레이커스>는 생략과 도약, 느닷없는 단절투성이인 영화다. 스키 마스크를 쓰고 총을 든 소녀들과 질주하다가도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고, 다음 순간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뛰어넘는다. 그 조각들을 한편의 영화로 만드는 건 젤리 덩어리처럼 엉겨붙는 감정이다.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조바심이 한데 녹아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혼란을 감싸안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코린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버스터 키튼의 시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영화에 빠진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영화에 흥미를 잃은 다음부터 “콜라주에 가까운, 태피스트리 같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나의 영화는 마땅히 그래야 했다.”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소년 코린이 아이들을 관찰하던 사진작가 래리 클라크에게 짧은 시나리오를 건네던 순간, 그 꿈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코린의 부모는 뭔가 수상쩍은 일을 하면서 몇달씩 아들을 생활공동체에 내버려두고 사라지곤 했다. 그렇다고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방치된 아이는 떠들썩한 감정 과잉의 공동체에서 충분히 즐거웠고,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빌리거나 극장에 가서 종일 영화를 봤다. 그 아버지의 직업 중의 하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그렇게 자란 코린은 언제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학교를 다니는, 진짜 삶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거의 없는 부잣집 도련님들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간부들을 앞에 두고 떠드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언제나 영화였다. 그 소망 때문에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면서, 열세살 생일을 맞은 소년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창녀를 찾는 시나리오를 써서 래리 클라크에게 내밀었고, 클라크의 주문에 따라 에이즈에 걸린 소녀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썼고, 스물한살에 <키즈>의 시나리오작가로 찬란한 조명을 받았다. 행운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게 온전한 행운이었을까, 워싱턴 스퀘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아이들 중에서 도대체 몇명이나 래리 클라크를 알아보았겠는가, 라고.

가짜를 부정하며 산다는 것은 가짜 속에서, 또는 가짜로 사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키즈> <검모> <줄리앙 동키 보이>로 매번 파란을 일으켰던 코린은 찬란한 성공의 순간에 문득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 평범하지 않았던 환경, 내키는 대로 정체성을 부여하는 매스컴의 관심 속에서 “예술가가 자기 멋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니” 하고 경악했던 코린은 “사라지고 싶었다”. <줄리앙 동키 보이>를 정말 좋아했던 <가디언> 기자는 코린과 이메일 인터뷰를 약속했지만 답변을 받기로 한 날, “그딴 걸 누가 알고 싶겠어요?”라는 한줄이 적힌 팩스를 받았다(나중에 미안하다고 했다).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영화의 세계로 도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코린은 “강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리얼리즘을 추구했지만 자신의 현실 속에 침몰했다. 그러나 그 난파선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힘도 어찌됐든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현실에서 나왔다. 코린은 사실만을 재료로 썼지만,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부유하는 그의 영화들은 결코 리얼리즘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리즘이 빛을 부수는 것처럼, 그의 시선 속에서 현실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파편으로 변했다. 그처럼 과장된 명성과 오직 사적이었던 예술 사이에, 그가 살아갈 길이 놓여 있었다.

<줄리앙 동키 보이>

<검모>

젊음의 본질에 대해 묻다

원인 불명의 화재로 집을 잃고 파리로 건너간 코린은 자기가 프리모 레비라고 믿는 정신 나간 포주와 남편을 살해한 옛 친구 같은 믿기 힘든 현실에 둘러싸였다. 메타돈과 수면제에 중독되어 있었으니 과장되고 비틀린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통과하여 코린은 자신을 마이클 잭슨과 마릴린 먼로, 셜리 템플, 찰리 채플린 같은, 환상의 절정으로 규정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 <미스터 론리>를 만들었다. 로저 에버트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한 영화, “별 두개짜리 영화를 긍정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바라게 했던 기묘한 영화였다.

몽둥이찜질을 당한 고양이 시체 같은 역겨운 이미지(<검모>)에도 불구하고 코린의 영화를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 그런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그마 선언에 동참했음에도 다큐멘터리조차 거짓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코린은 영상으로 산문을 쓰지 않는다. 버스터 키튼의 팬이었던 그가 원했던 것처럼 그의 영화는 시(詩)가 되었다. 그가 20년 가까이 말해왔듯이 “논리를 들이대는 순간 허물어지는” 감정의 창조물이 되었다. 행과 행 사이,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그는 왜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훨씬 경제적인 방법인데. 코린의 영화를 보면 그것이 궁금해진다.

어찌보면 코린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구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과장하는 MTV 시대에도 그는 고집스러웠다. “비전문 배우들은 프로들이 줄 수 없는 것을 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준다”고 말하면서 그는 시네마 베리테라는 한 세대 전의 단어를 입에 올리곤 했다(건방졌던 20대 시절 코린은 트뤼포도 샤브롤도 지루하다면서 오직 고다르만이 진정한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코린이 <하이스쿨 뮤지컬>의 바네사 허진스와 함께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찍자 많은 이들이 물었다. MTV를 참고했느냐고. MTV조차 낡은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은 2012년에.

아니, 그렇지 않았다. 나이를 먹지 못한 코린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대학생들의 봄방학을 주워모았을 뿐이다. “방탕하게 놀고 처녀성을 잃고, 그 모든 것을 해변에 묻고 잊어버린 채 돌아오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현실이어야만 하는 시간에 매료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눈치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청춘의 변화를. “젊음의 분노라는 본질은 그대로이다. 다만 우리 시대에는 숨으려 하고 그림자가 되려 했다면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한다는 점이 다르다. 소통의 방식이 바뀌었다.” 그 본질은 비슷하기에 <스프링 브레이커스>에는 SNS나 휴대전화가 필요하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공중전화를 본 것이 얼마 만이지 모르겠다.

코린은 자신이 언제나 “미국의 풍경을 담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미국이란 언제나 젊고자 하는 나라이다. 중년의 ‘피핑 톰’이 등장하는 <트래쉬 험퍼스>조차 “노인네의 가면을 쓴 아이들”의 영화라는 평을 얻었던 코린은 젊음이 최상의 가치인 미국의 풍경을 담되 그 젊음이 얼마나 누추한지 또는 얼마나 조급한지를 담는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국은 소망한다. 눈앞에서 삶이 부서져나가는데도 지금 이 젊음이 최고의 순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키즈>

버스터 키튼처럼

코린이 처음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18년이 흘렀다. <키즈>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스무살 청년들 또한 그처럼 나이를 먹었을 시간이다. 이제 코린은 대학생인 캔디와 페이스보다는 금니를 씌우고 흘러간 시절을 회고하는 에일리언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한순간 말을 멈추고 침묵하는 사이, 그가 좋아하는 보드빌처럼, 그가 경애하는 버스터 키튼처럼, 움직임과 음악만이 존재하는 시간의 마력은 여전하다. “아름답고 진실한, 오래 지속되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그는 누군가 자신의 영화를 좋아해준다면 그건 우연이라고 믿는다. 다만 마음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이미지 하나가 남는다면 그것으로 그 영화는 성공이라고도 믿는다.

그렇다면 <스프링 브레이커스>는 성공이다. 물가에 놓인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에브리타임>을 연주하는 에일리언과 분홍색 비키니를 입고 춤추는 세명의 소녀, 절정의 생명력과 황혼의 조우. 코린은 여전히 두 금발 소녀가 팔짝거리는 <검모>에 머물러 있다. 다만 모두가 떠난 그 영토 안에서 젊은 얼굴을 한 채 홀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그 잎만은 푸른 것처럼.

구스 반 산트 감독.

‘진짜배기’ 우군들

하모니 코린의 영화적 동지들

평단의 찬사와 그보다 더한 모멸을 받았던 하모니 코린이지만 그에게는 ‘후원자’라고 부를 만한, 오래되고 든든한 연상의 아군들이 있었다. <아귀레 신의 분노> <피츠카랄도>의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코린을 아버지와도 같은 애정으로 대했다. 처음 코린을 대면하고 “그 나이였을 때의 나와 너무 닮아 깜짝 놀랐다”고 말한(지금 헤어초크 사진을 본다면 듣는 사람도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코린의 영화 <줄리앙 동키 보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굿 윌 헌팅> <라스트 데이즈>에 코린을 배우로 기용한 구스 반 산트는 <검모>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평론가 스티브 딜런은 반 산트가 하모니 코린과 래리 클라크를 후원하고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면서 <제리> <엘리펀트> 같은, 젊은이들에 관한 독립영화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하모니 코린이 “영화 언어의 혁명을 이루었다”고, 그 자신이 혁명가였던 선배로서 파격적인 칭찬을 했다. 코린의 영화를 보고 냉정한 이성과 끌리는 감성 사이에서 갈등했던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코린은 고다르, 카사베츠, 헤어초크, 타르코프스키처럼 관습적인 영화를 파괴하고 재조립한, 길들여지지 않은 감독군에 속한다”고 평했다. 어찌됐든 코린은 에버트에게 ‘진짜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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