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순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독일 제2공영방송 <ZDF>(체데에프)의 미니시리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다시 화제다. 이웃나라 폴란드에서 갑론을박 논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빨치산들을 독일 나치 못지않은 반유대주의자로 묘사한 특정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지난 3월 방송 직후 폴란드 대사관은 <ZDF>에 항의서한을 보내왔다. <ZDF>쪽은 폴란드 대사관에 “철저한 역사고증을 바탕으로 했다”며 반박했다. 폴란드 공영방송국은 지난 6월 중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방영을 강행했고, 이에 따라 폴란드 우익보수야당이 공영방송국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폴란드 역사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3부작 드라마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독일 매체의 과거사 조명에 있어 더욱 진일보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전쟁을 겪은 현 독일인의 조부모 세대가 겪은 일들과 그들의 내면을 개연성있게 묘사한다. 2차 세계대전 시작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베를린의 다섯 젊은이들이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이들의 삶을 밀도있게 따라가며 평범한 개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묘사한다. 주간 <슈테른>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일차원적이거나 이상적으로 그려진 인물이 한명도 없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지 못하는 분열된 캐릭터들이다”라고 평했다. 특히 이 작품은 전쟁을 묘사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의 금기를 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가운데 벌어지는 폭력과 성에 대한 묘사가 가감없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방영 당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독일에서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60여개국에 판권을 판매하며 해외 수출에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최근 영국 <BBC>의 한 여론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나라’로 등극한 독일이지만, 정작 독일인들은 부모, 조부모 세대가 지은 업으로 주눅들어 있다. 전쟁은 가족끼리도 터부로 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부모나 조부모가 실제로 겪었을 일을 드라마를 통해 본 젊은 세대에게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시간이었을 거다. 어쩌면 이 작품은 다음 세대에게 이해를 구하는 거대한 집단치료의 장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