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가을이었다. 담임 선생이 갑자기 수업을 멈추더니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다. 선생들은 곧이어 정문 바깥으로 학생들을 몰았다. 무슨 일인지 도로엔 지나는 차가 전혀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학생들은 정문 앞 대로변에 쭉 늘어섰다. 조금 있다가 보이지도 않는 대열의 끝에서부터 박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는 고급 승용차 몇대가 눈앞을 쓱 하고 지나갔다. 모두들 손을 흔들었으나 영문을 아는 이는 없었다. 검은 차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교실에 돌아온 담임 선생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날 학교 앞을 지난 사람이 전두환이었음은 아버지가 말해줘서 뒤늦게 알았다. 그때 고작 여덟살이었다. 특별한 감정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인지하지 못했던 수치심과 모멸감은 10년이 다 돼 갑자기 찾아왔다. 김진경 시인이 쓴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를 읽다가,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광기의 폭력으로 무장한 계엄군의 최초 집결지였음을 알게 됐다. 그때 검은 리무진 안에서 전두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천인공노 살인미소.
국민 혈세를 가져다 연간 경호비로만 7억원을 쓴다는 전두환 집에 드디어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의 아들들과 친척들이 소유한 회사에도 검찰이 들이닥쳤다. 1997년 대법원에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지만, 전두환은 29만원밖에 없다며 ‘배째라’ 버티기로 그동안 일관해 왔다. 진시황릉은 한국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은닉 자금 세탁에 쓰였을 것이라 의심되는, 고가의 미술품들이 전씨 가족들의 집과 회사에서 며칠째 쏟아져 나오고 있다.(대부분 가짜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직접 보지 못했던 30여년 전 전두환의 천인공노 살인미소를 또다시 상기시킨 건 이순자의 후안무치 눈물바람이었다.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는 친정어머니가 숨진 뒤 가져온 자개장롱에 검찰이 압류 딱지를 붙이자 감정이 북받쳐 울먹울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검사와 수사관들한테도 많은 얘기를 하며 하소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7월16일치 <한겨레> 기사다. 이순자는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던 것일까. 자개장롱 안엔 도대체 무슨 사연이 담긴 것일까.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광주의 넋들 앞에서 사죄의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던 이순자 아니던가.
<씨네21> 기자들이 애용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화장실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답니다. 바로 고집스러울 만큼 강한 집중력을 가졌다는 거예요. 마치 레이저 불빛처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들은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단 한치의 곁눈도 팔지 않습니다.” 전두환의 살인미소와 이순자의 눈물바람의 공통점. 살육을 업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들은 고집스러울 만큼 갖고 있는 게 있다. 놀라운 집중력이 아니라 치떨리는 소유욕이다. 살인미소와 눈물바람은 그 소유욕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화장실은 언제나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으리으리한 전씨 궁궐에서 토해져 나오는 미술품에서는 구린 냄새가 난다. 나만 그럴까. 다들 코 막을 것이다. 전두환 비자금을 두고 총력 수사를 국민 앞에 약속한 정부와 검찰이 전씨 일가의 배설물 앞에서 나자빠져선 안된다. 그건 똥 치우려다 똥 뒤집어쓰는 꼴이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