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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2인칭을 사용하는 살인범
금태섭(변호사) 2013-07-18

<공범> 이언 뱅크스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열세살의 남자아이가 있다. 이름은 카메론 콜리. 그에게는 한살 더 먹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앤디라는 친구가 있다. 둘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함께 붙어 다닐 만큼 친하지만, 카메론에게는 어려서 앤디가 얼어붙은 호수에 빠졌을 때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달아난 어두운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두 아이는 숲에 놀러가서 여자 얘기를 한다. 한살 더 먹은 앤디는 발기된 성기를 꺼내서 자랑삼아 보여주고 카메론은 경탄스럽게 만져보다가 그만 사정을 시키고 만다. 시시덕거리며 뛰어가던 아이들은 험상궂은 남자에게 뒷덜미를 잡힌다. 무슨 짓을 했느냐고 추궁하는 남자 앞에서 아이들은 겁에 질리고, 남자는 앤디를 넘어뜨리고 성폭행을 한다. 울면서 도망가던 카메론은, 그러나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돌아온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남자가 정신을 잃자 밑에서 빠져나온 앤디는 나뭇가지를 받아서 다시금 여러 차례 머리통을 내리갈긴다. 남자가 죽자 카메론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하지만 결국 앤디의 말에 따라 시체를 터널 굴뚝 아래 숨긴다.

세월이 흘러 카메론은 기자가 된다. 술과 마약, 컴퓨터 게임에 찌들어 살고 절친한 친구(앤디는 아니다)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으며 무절제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그는 성폭행범에게 관대한 판사, 포르노 제작업자, 부패한 정치인 등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우리 모두를 위해 누군가가 이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TV 비평 기사를 쓴다. 그날 이후, 그 기사에서 거론된 사람들이 한명씩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카메론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한다. 이언 뱅크스의 <공범>은 사회의 부조리를 개인적으로 응징하는 사적(私的)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카메론이 ‘나’로 등장하는 1인칭 시점과 부패한 인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너’라는 사람이 화자가 되는 2인칭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 흔한 스토리-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서 일탈에 빠지고, 결국은 법을 대신해서 직접 해결사가 되는- 에도 불구하고 책이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은 이렇게 시점의 이동으로 표현되는 범인의 다중적인 모습 때문이다. 어릴 적의 경험이 카메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가 쓴 기사의 예고에 따르는 것처럼 연쇄살인을 벌이는 사람은 누구인지, 카메론과 범인은 같은 사람인지 혹은 다른 사람인지. 이 모든 의문이 ‘너는 00를 죽인다’와 같은 2인칭 문장에 절묘하게 함축되어 있다.

작가 이언 뱅크스도 이 소설의 범인과 같이 이중적인(작가로서) 삶을 살았다. SF소설과 일반 소설 모두 일가를 이룬 그는, SF를 쓸 때는 ‘이언 M. 뱅크스’라는 이름을, 일반 소설을 쓸 때는 ‘이언 뱅크스’라는 이름을 썼다. <공범>을 읽고 이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싶은 독자에게는 <말벌 공장>을 권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제까지 나온 소설 중 가장 잔혹한 책이라는 평을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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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칭을 사용하는 살인범 <공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