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기라는 것은 나 같은 범인에게는 유니콘과 같아서 그 존재에 대해 들어도 보고 읽어도 보았으나 몸으로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는 어떤 것이다. 색기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대학 때였는데, 상경대쪽에 유명한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나라인가의 교포였는데 나보다 한 학번 위고 일단 괜찮게 생겼지만 연예인을 갖다댈 만한 꽃미남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문이 돌기로는 그 애가 연상녀 킬러였다(고 한다). 부모가 외국에 있어서 그애 혼자 서울 생활을 한 지 3년인가 되었는데, 그때 같이 살던 여자가 세 번째 동거녀인가 그랬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웃긴 대목은, 그 이야기를 하던 나와 친구들 모두 그 남자애를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것일 거다. 연상녀들을 압도한다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잘생긴 것도 아니라는데 대체 뭐지? 그 이야기는 결국 ‘(얼굴이나 한번)보고 싶다’에서 ‘자보고 싶다’로 흘렀고 둘 다 불발에 그쳤다. 그때 그 대화가 생각난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를 읽으면서다.
자고로 소도시의 소문이란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는 법이다. <소문의 여자>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어느 지방도시가 딱 그렇다. 장편소설이지만 일종의 연작 단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서는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소문이 피어오른다. 중고차 판매점, 마작장, 요리교실, 파친코… 이곳저곳에서 다른 화자가 등장하지만 모두 같은 여자를 만나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남자가 이토이 미유키라는 이 여자를 보면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색기를 느끼게 되고, 여자가 보면… 경우에 따라 다르다. “여자란 남자가 보는 것하고 같은 여자가 보는 것이 상당히 달라. 남자들은 본성까지는 파악을 못해”라고 단호하게 그녀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자신의 재산(엄밀히 말하면 환갑이 넘은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하리라는 근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유키의 옛 동창들은 옛 애인과 남편을 모두 수상쩍은 방법으로 저승에 보낸 뒤 부유해진 그녀를 오히려 동경한다.
돈을 지불하고라도 가질 수 있다면 배척할 이유가 없는 게 이성의 색기, 내가 금전적 손해를 입지 않을 상황이라면(혹은 같은 이성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되는 게 동성의 색기. 오쿠다 히데오는 ‘저자의 글- 친애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께’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한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문제의 여자 미유키는, 맥거핀이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사실 그녀에 대해 말하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문은 때로, 그 주인공보다는 화자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법이다.